우리나라에서 고속버스가 처음 달리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44년 전인 지난 1969년 4월의 일이다. 한진고속에서 20대의 고속버스로 서울~인천 간 운행을 시작한 것이다. 이듬해에는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맞물려 남쪽으로 남쪽으로 운행 구간이 연장되어 갔다.
그러나 고속버스 운행은 시작부터가 엉망이었다. 6개 업체가 각 회사의 형편대로 터미널을 마련하다 보니 그 위치가 제각각이었다. 한진고속은 서울역 앞 봉래동 입구에, 삼화고속은 종로구 관철동에, 그리고 광주고속 등 4개 업체는 동대문 앞에 있던 식이다. 그렇다고 모두 대합실을 갖춘 것도 아니었고, 만에 하나 있더라도 협소하기 그지 없었다.
결국 7년 뒤인 1976년, 보다 못한 서울시와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남편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만 오면 침수되던 서울 반포동의 허허벌판에 종합터미널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다만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터미널의 입지가 당시 사정에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기 전으로 서울 인구 대부분이 강북에 몰려 있던 시절이다 보니 고속버스 회사들 입장에서는 일단 서울 각지에 흩어져 있던 각각의 터미널에서 승객을 태운 뒤 반포동을 거쳐가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건물마저 가건물이다 보니 반포동 터미널은 결국 '야간 주차장'으로나 이용될 뿐이었다.
사정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 들어서였다. 강남 개발로 주변에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서고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대중교통편이 확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덩달아 터미널 이용자들도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1980년대 들어서는 번듯한 새 터미널 건물도 지어졌다. 지금 경부선 버스들이 발착하고 있는 11층짜리 건물과 센트럴시티 자리에 있던 호남선 건물이 그것이다.
지난 경제개발시대 이래 전에 없이 빠른 속도로 전국 각지를 연결하는 창구가 되어온 서울 반포동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항공기나 KTX에 이동인구의 상당 부분을 빼앗긴 상황이긴 하지만,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은 여전히 수십 년째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
/권기봉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