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의 잠재 성장력을 겨냥한 신용카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당국은 가계의 신용카드 관련 부실채무를 우려해 올해 대대적인 카드업 규제에 나설 방침이어서, 글로벌 여신업체의 계획에 변수가 생겼다.
11일 WSJ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내 신용카드 개수는 지난해 1500만개로 최근 5년간 60%나 급증했다. 신용카드를 통한 거래액수는 이 기간 3배 가까이 늘어 210억달러에 달한다.
2억5000명이 넘는 거대한 인구를 보유한 인도네시아를 노리고 카드업계는 치열한 고객 유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인 중에는 각종 공짜나 할인혜택을 받으려고 10장 이상을 발급받는 사람들도 속출하고 있다.
WSJ는 현지 전자회사에 근무하는 루스마니(여·28세)의 예를 들었다. 그녀의 월소득은 한달에 1000달러(110만원 상당)에 못 미치지만 이미 13개의 신용카드를 갖고 있다.
지난 2010년에 첫번째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후 자국내 20여군데 은행에서 계속 가입 권유를 받고 있다. 카드사 직원들이 사무실로 찾아오는 정도는 약과이고, 심지어 생일날 선물을 들고 그녀의 집으로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
루스마니는 지갑 두개에 나눠가지고 다닐 정도로 많은 신용카드들로 피자를 50% 할인받고, 공짜 영화를 보며 주유소 10% 할인과 비행기 티켓 또는 식료잡화점의 15% 할인을 제공받는다.
다만 인도네시아 금융당국은 슬슬 이같은 신용 거품에 제동을 걸 준비를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이 새로운 규제 조치를 도입하면 인도네시아인 몇백만명은 현재 보유 중인 카드 개수를 1~2개로 줄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WSJ는 인도네시아 내 신용카드 관련 부실채무 비율이 최근 4년간 하락하는 추세(2009년 9% → 지난해 3.5%)임에도, 현지 당국이 선제적 측면에서 이같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관계자는 "일부 은행들은 고객의 소득 수준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무조건 신용카드를 발급해주는 경우가 있어서 우려를 거둘 수 없다"고 말했다.
먼저 인도네시아 당국은 신용카드 발급 요건을 18세 이상, 월 300달러 이상 소득으로 강화했다. 또 개인별 신용카드 사용 한도액은 발급받은 본인 월 소득의 3배를 넘을 수 없다. 한달에 1000달러 미만의 소득을 올리는 개인은 신용카드를 2개 이상 발급받을 수 없다.
WSJ는 이같은 신규 규제가 시행되면 올해 안으로 인도네시아에서 발급 취소되는 신용카드가 400만개에 이를 전망이라고 전했다. 이같은 조치로 인해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공격적인 영업 전략을 진행하려던 비자와 마스터카드, 씨티그룹, HSBC, 스탠다드차타드 PLC 등 해외 업체들의 계획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관측됐다.
물론 인도네시아 당국의 우려에도 불구, 아직 현지 신용카드 보급률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와 비교해 높지 않은 수준이다. 인도네시아의 신용카드 보급률은 15% 정도로 각각 25%를 넘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 크게 못 미친다.
지난 7일 인도네시아 일간 자카르타글로브에 따르면,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올해 인도네시아 은행권이 대출 성장과 강력한 자본을 바탕으로 강한 이익 성장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평가하며 은행권의 경쟁 심화에 우려를 표했다.
S&P는 "인도네시아 은행들이 여전히 경제적으로 큰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며 "인도네시아의 1인당 국민소득이 국제 기준으로 봤을 때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경제적 충격이 발생했을 때 이를 흡수하는 완충재 역할을 할 만한 요소가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신용 거품이 터질 경우 내수 소비가 급속하게 쪼그라들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당국이 서둘러 신용카드 시장의 건전성 제고에 팔을 걷어부친 배경이기도 하다.
S&P는 인도네시아 은행간 경쟁 심화로 더 많은 고객(대출·예금 등)을 유치하려는 개별 은행의 노력이 오히려 수익성을 해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프라 시설의 부족과 부패, 노동시장의 경직성 역시 경제 발전의 걸림돌"이라고 덧붙였다. S&P는 국제신평사 중에 유일하게 인도네시아에 투자부적격 등급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