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내리면 지난 2009년 착공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짓느라 쳐놓은 펜스를 맞딱뜨리게 된다. 애당초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였던 지난 1925년 '경성운동장'으로 들어선 이후 최근까지 각종 경기가 열리는 운동장으로서 기능해온 곳이다. 남북 교류의 한 방편이었던 '경평축구대회'를 비롯해 고교 야구와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국제여자농구선수권대회 등 미처 헤아릴 수 없는 스포츠 행사들이 치러졌다.
그렇다고 동대문 운동장에서 스포츠 경기만 열린 것은 아니다. 해방 뒤 환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환영행사'를 비롯해 '정부수립 10주년 광복절 기념식', '재일동포 북송 반대시위' 등 다양한 정치사회 행사들도 열렸다. 서울을 넘어 한국 정치사에 있어서도 살아있는 현장이었다.
문제는 그런 장소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지으면서 이전의 역사적 맥락을 깡그리 무시했다는 점이다. 조명시설이나 성화대 등 동대문운동장의 일부 시설을 남겨 놓기는 했지만,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영 어색해 보인다. 새 건물과 아무런 연결고리 없이 그저 '남겨 두기'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외부 디자인만 있을 뿐 정작 그 안을 채울 콘텐츠가 부족해 난관에 빠져 있는 실정이었다. 도중에 서울 한양도성의 일부인 이간수문이 발견돼 처음 설계할 때에 맞먹는 수천억 원을 들여 설계를 변경해야 했다. 아까운 세금이 이중삼중으로 들어간 셈이다. 결국 애초 계획보다 1년 정도 미뤄져 올 7월에 문을 열 예정이지만, 가능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두고 전형적인 전시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의류 디자인에서부터 제조와 판매까지 일관화된 곳으로 명성이 높은 동대문 일대이만큼, 바로 그곳이야말로 디자인 관련 시설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시작된 사업이었다. 하지만 처음이나 지금이나 주변 상인들은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이름에만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을 뿐, 정작 동대문 상인들이 필요로 하는 주차공간 확보 등 기반 시설에 대해서는 충분한 디자인이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 디자인을 이유로 서울 대학로의 인도에 물이 흐르는 실개천을 만들었다가 행인들이 빠지자 결국 유리판을 덮는 탁상 행정의 폐혜를 경험한 적이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원래 의도와 의미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 봐야 하지 싶다.
/권기봉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