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엿새 앞둔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 시장은 한창 세일 중이었다. 폭설이 내린 뒤였지만, 시장 안은 장을 보러 나온 주부들로 북적였다. 눈에 띈 건 다양한 세일 문구였다. 막바지 명절 특수를 기대하는 상인들이 쇠고기부터 모듬전까지 가격을 내리고 있었다.
'동태 1마리에 1000원'이란 가격표도 내걸렸다. 제주옥돔의 김윤호 사장은 "이렇게라도 값을 깎아야 사간다"며 "생물 가격이 30%나 올라 국내산 참조기보다 수입산 부서 조기를 대신 찾는 주부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명절에도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는 손님들을 잡으려고 상인들은 고육지책을 짜내고 있었다. 1근 7000원짜리 모듬전은 1000원 내리고, 2만원이 넘던 국거리 쇠고기는 1만6000원 균일가에 팔았다. 적게 남더라도 많이만 팔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천시장을 40년 넘게 지켜온 영천전의 구윤희 사장은 "보통 명절 일주일 전이면 예약 손님이 꽤 있는데 올해는 전혀 없을 정도로 경기가 안 좋아 구정맞이 할인을 시작했다"며 "설이 다가올수록 덤도 많이 주니 시장을 찾아오라"고 권한다.
최근 전통시장에선 소포장 제품도 쉽게 볼 수 있다. 한 끼 먹을 만큼만 적게 차례 음식을 차리는 가정이 늘어서다. 푸짐하게 준비했던 한과나 떡국떡 등도 조금씩 나눠 판다. 이날 방문한 과일가게에선 명절이면 박스째 사가던 손님은 없고 사과나 배를 3개나 5개씩만 사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차례상에 올릴 과일과 곶감, 밤, 대추 등을 사러 나온 주부 최영애(43)씨는 "결국 차례상 규모를 줄여 전통시장에서 사는 게 돈을 아끼는 최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산지와 직접 계약업체 이용도
주부들이 체감하는 차례상 비용은 어느 정도일까. 설 명절을 앞두고 대형마트와 시장경영진흥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이 발표한 차례상 비용은 20만원 안팎으로 지난해 설 명절보다 6% 가량 비싸졌다.
그러나 주부 김현영(34)씨 생각은 다르다. 김씨는 "그런 자료를 보면 조기는 한 마리이고 곶감도 달랑 5개인데다 떡도 없어 현실성이 떨어지는 데다, 식용유나 밀가루 같은 부재료 값은 빠져있어 실제로 상을 차리려면 30만~40만원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차례상 비용을 아끼려는 주부들이 최선의 묘안을 짜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크로스오버 장보기'다.
최근 시장경영진흥원과 전통시장·대형마트를 대상으로 차례상 물가조사를 진행한 전국주부교실중앙회의 최애연 국장은 "농·축·수산물은 전통시장이 저렴한데다 사과 하나라도 품질과 가격이 다양해 예산에 따라 고르기 좋고, 대형마트는 가공식품이 저렴하니 품목별로 나눠 쇼핑을 하라"고 조언했다.
시장경영진흥원에 따르면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채소류는 22%, 수산물은 17%, 과일은 11% 정도 저렴했다. 반면 밀가루의 경우 대형마트가 3% 싸게 팔았다.
폭설과 한파 탓에 값이 오르는 신선식품의 경우 산지와 미리 계약을 맺어 값을 동결한 매장을 찾는 게 한 방법이다. 생협(생활협동조합)이 대표적이다. 아이쿱생협의 자연드림에선 유기농 시금치가 100g 1260원으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최근 조사한 유기농 시금치 거래가격(100g 1400원)보다 저렴했다.
친환경식품전문점 초록마을 또한 산지와의 연간 계약재배를 통해 '널뛰기 가격'을 줄이고 있다. 사과·깐밤·한우국거리·조기 등 설 성수품 19개 품목 비용이 16만8580원으로 대형마트보다 15% 저렴했다.
대형마트 또한 산지와 사전 계약한 직거래 상품을 늘리고 있다. 홈플러스에선 오늘(6일)까지 과일, 생선, 고기, 두부, 나물 등의 가격을 유지한다. 사과와 단감은 지난해보다 38%, 27% 가격을 낮춰 개당 2480원, 600원에 판다. 이마트에선 최대 55%까지 가격을 낮춘 행사 상품을 2000여종이나 준비했다. 제주 무 990원, 한우 국거리(100g 2500원), 토종닭(1마리 8500원) 등 대대적인 판촉행사를 벌이는 중이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 가정이 늘면서 이들을 겨냥한 할인 행사가 등장하고 있는 것도 새로운 풍경이다. 온 가족이 모여 먹기 좋은 고가 식재료가 주로 팔리는데 온라인쇼핑몰이나 소셜커머스, 모바일쇼핑을 통해 보다 싸게 구입하는 이들이 많다. 오픈마켓 11번가 관계자는 "구이용 고기나 랍스터, 왕새우, 회 등이 명절을 앞두고 주문이 몰려 신선하게 배송될 수 있게 포장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전효순·박지원기자 hsjeon@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