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해의 업무추진비, 즉 판공비를 절반 넘게 남기고도 올 3월부터는 법인카드의 사적 사용 방지를 위한 모니터링 체계까지 구축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문득 예전 회사원 시절의 일들이 떠올랐다. 아무리 모든 접대비 영수증에 같이 밥 먹은 사람의 이름과 소속을 적어 놓았다 해도 '냄새가 나는' 영수증들이 빤히 보였고 부서장이던 나는 눈물 쏙 빼게 직원들을 야단쳤지만 다른 팀 사람들이 뻔히 사적 용도를 위해 법인카드를 사용하거나 심지어 외주업체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취하며 위아래 라인으로 담합해서 교묘히 서로를 감싸는 것도 지켜봤기에 야단을 치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눈먼 돈처럼 쓰는 것을 막기 위한 모니터링 체계는 물론 환영할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공무원쯤 되면 부서장이나 총무회계팀 정도 선에서 진작에 통제가 되어 상부로 기안이 올라갔음 싶은 사안에 우두머리가 직접 나서서 지휘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했다. 더 나아가 과연 그것이 통제가 될 수 있는 문제일까? 누구랑 어디서 먹었냐를 기재하는 것도 부서 내에서 혹은 부서간에 담합만 되면 대부분 조작 가능한데, 일괄된 경비사용기준을 상명하달식으로 통제하기 시작하면 아랫사람들은 오히려 반발심을 느껴 그 안에서 더 머리를 쥐어짜서 빠져나갈 구석을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널 믿지 못한다고 하면 더 믿지 못하도록 반항하는 심리. 그 와중엔 꼭 치사한 거 싫다며 차라리 자기 개인 돈을 써버리고 마는 부서장들도 있었다. 뻔뻔하게 '해먹는' 일부 직원들이 나쁜데 되레 올곧은 이들만 더 손해 보는 시스템이 되지 않을까 신경 쓰인다.
업무사기를 떨어트리지 않으면서도 돈을 가지고 고질적으로 장난을 치는 일부 직원들의 악습을 고칠 시스템구축을 마련한다면 모든 기업들도 앞다투어 벤치마킹을 할 정도로 좋은 일이겠지만 일부 악성 바이러스를 잡으려다가 자칫 체력 전체를 비실비실하게 만들어버릴까 조금 우려가 되었다. 더불어 솔직히 단 한 번이라도 법인카드의 공짜 밥 한 끼 혜택이라도 받지 않았던 대한민국 월급쟁이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싶었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