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에 서점을 어슬렁거리다 '죽음'에 관한 책들을 발견했다. 일상에서 죽음과 관련된 것들은 발설자체가 금기시된 게 우리 사회다. 오죽하면 숫자 4를 기피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길 정도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웰 다잉(Well dying)'까지 이어지는 책들을 보며 이제 절대 깨어질 것 같지 않았던 또 하나의 고정관념이 사라지는 걸 감지했다. 대한국민의 인류적 DNA가 또 다른 차원으로 진화 중인 것이다.
죽음에 대한 철학적, 인문학적 사고가 사회와 공유되는 것은 웰빙, 멘토링, 힐링, 자기성찰로 이어지는 정신적 성숙의 연장이다. 몸을 건강하게 하고, 정신을 자유롭게 하고, 자아를 바로 세웠으니 시간에 대한 근원적 고찰에 접근하는 게 순서다. 여기에 웰다잉에 대한 사상이 얹혀진 것은 죽음에 대한 성찰이 현재의 삶에서부터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즉, 시간의 분할과 다차원적 공간에 대한 이해를 갖춘 사람이 많아졌다는 증거다.
예로부터 인생에는 오복(五福)이 있다고 회자됐다. 오복은 천수를 다 한다는 수(壽), 남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괴롭히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재물을 가진다는 부(副), 튼튼한 몸을 지닌다는 강과 정신적 건강함을 유지한다는 녕의 강녕(康寧), 늘 남에게 주고 도우려는 자세를 유지한다는 유호덕(攸好德) 그리고 수명을 다하는 순간에 고통 없이 떠난다는 고종명(考終命)이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치아건강'은 오복이 아니다.
오복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면면이 매우 유착된 개념이다.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결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없다. 반면 복 하나를 갖고 그것을 잘 지키려 노력하면 나머지 복을 갖는 게 어렵지 않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물론 복을 타고나는 것으로 단정지으면 얘기가 안 된다. 하지만 복은 정해진(made)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making)되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 '복 많이 받으세요'는 '성실하고 바르게 사세요'의 다름 아니다.
웰다잉은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오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제시어다. 정답은 없겠으나 계사년의 화두로 삼기에 부족함은 없겠다.
/박상진 인터패션플래닝(www.ifp.co.k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