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패션기업 임원 P씨가 '어떻게 해야 지갑을 열까요'라는 카톡메시지를 보내왔다. 오죽 답답했으면 주말에 연락을 했을까 싶어 함께 시장조사를 나가자고 회신했고, 필자는 왕십리역 패션몰 엔터식스에서 P씨를 만났다. 쇼핑몰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북적거렸다. 사람들은 숙제를 앞에 둔 학생처럼 진지한 얼굴로 방한 아이템을 살폈다.
우리는 쇼핑몰에 들어오는 몇 사람을 택해 그들의 동선을 따라다녔다. 두 시간쯤 지나서 소비자들이 혹한으로 인한 쇼핑을 제대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운재킷은 단연 인기였다. 하지만 더 높은 인기를 끈 아이템은 방한용 이너웨어였고, 니트 스웨터나 티셔츠 안에 입을 수 있는 목폴라티셔츠였다. 100만원 대의 다운재킷과 1만원 대의 보온 아이템을 함께 구매하는 게 지금의 소비자다.
SPA브랜드가 몇 년째 소비자를 사로 잡는 이유 중 하나는 저렴한 가격 대비 우수한 디자인, 실용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이는 패션 소비가치 수식으로 보면 '가치=혜택/가격'의 값이 크다는 얘기인데, 여기에는 소비자가 굳이 패션아이템을 몇 년씩 소비하지 않아도 좋다는 의식이 한 몫을 하고 있다. 즉, '고가제품=럭셔리'라는 등식에서 자유로워졌다는 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고가제품 소비자와 저가 제품 소비자는 극명하게 양분됐지만 이젠 아니다.
소비자는 소비능력이 충분하다. 금액 면에서 그렇고, 소비층의 두께 면에서 그렇다. 불경기지만 불경기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며, 경기가 좋아도 언제든 불황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도 유효하다.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려면 '혜택'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해야할 듯 하다. 지금의 소비자는 어떤 것을 받았을 때 혜택이라 생각하는지, 그래서 소비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2013년의 소비자 키워드는 'Praxury(Practical+Luxury)'이다. 소비자는 준비됐다. 기업은? /인터패션플래닝(www.ifp.co.k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