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또는 지금 중국이 '동북 3성'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고대사에서는 '요동(遼東)'이라고 했다. 사마천의 '사기'에 이미 이 명칭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이 지역에 대한 호칭으로는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겠다.
고대사에서 요동의 강국은 고조선, 부여, 고구려 그리고 발해 등이었고 훗날 여진이 이곳을 중심으로 일어나 중원을 차지하면서 청(淸)을 세우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중국사는 이 지역의 주민들을 일괄적으로 동이라고 불렀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부여가 예(濊), 고구려가 맥(貊), 그리고 신라와 백제 그리고 가야는 한(韓)이라고 했다. 부여가 고구려에 복속된 이후 고구려는 '예맥 공동체'가 된다.
고구려를 뒤따라 요동의 주인이 된 발해는 바로 이 예맥공동체와 말갈이 하나가 된 결과였다. 이렇게 보면 고구려는 고조선을 잇는 '요동제국'이었고 '청'도 이 요동제국의 후예라는 점에서 동북아시아의 주도권은 이 지역을 누가 장악하는가에 달려 있었던 셈이다. 6세기, 고구려는 남하정책을 통해 한(韓)족의 거점인 신라와 쟁투를 벌인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등장하는 이야기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설화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 실린 이 이야기는 평강공주가 천민인 바보 온달에게 시집가서, 그를 장수로 길러낸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평강은 어린 시절 울보였고 그렇게 자꾸 울면 바보 온달에게 보내버린다고 했는데, 장성한 뒤 그녀 스스로가 눈먼 어머니를 모시고 걸인으로 살아가는 온달의 아내가 된다. 공주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온달이 바보가 아니라 평강이 바보라는 소리를 듣게 생겼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평강이 눈물이 많은 여인이라는 점이다. 그 눈물은 그녀가 자라난 뒤 천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고단한 삶과 하나가 된다. 그러자 그때까지 자신을 거리에서 구걸로 낭비하고 있던 온달은 온 들판을 누비는 장수로 우뚝 선다. 고구려가 요동과 삼한지역의 일부를 통합하고 강력한 제국이 되는 까닭을 우리는 여기서 읽게 된다.
지도자가 자신의 궁궐에서 권력을 누리는 것에 빠져 있기만 하면 백성은 도탄에 빠져 눈이 먼 채 길을 헤매고 울부짖는다. 우린 지금 그런 시대를 끝내려고 이토록 애를 쓰고 있다. 가슴에 눈물이 많은 지도자가 바보 온달과 기꺼이 한 몸이 되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