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오래 전 용인의 한 테마파크에서 보안요원과 실랑이를 벌였던 적이 있다. 배낭공개를 요구하는 보안요원에게 불쾌한 심사를 가감 없이 드러낸 탓이었다. 결국 입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테마파크를 이용하는 고객이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테마파크는 그럴 권리가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그 날 필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검사에 응했고 즐겁게 놀이시설을 이용했다.
전남 신안군에 증도라는 섬이 있다. 이 섬은 입장요금을 받는다. 자동차는 지자체가 지정한 곳에 주차해야 하고, 섬을 돌아 다니는 수단은 도보 또는 자전거뿐이다. 박우량 군수는 환경과 생태를 위해 이러한 규제를 만들었다. 섬을 찾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불편함을 끼치더라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서의 가치를 훼손시키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반면 사람들은 '겨우 섬일 뿐인데'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고, 고객의 모든 기호를 만족시켜주지도 않는 테마파크의 규제는 수긍하는 소비자. 대대손손 지켜갈수록 그 가치와 의미가 커지는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규제는 멸시하는 소비자. 자본을 들여 만든 것에는 당연히 따라야 할 규칙을 허용하고, 그 어떤 자본으로도 만들 수 없는 자연에 둬야 할 규칙에는 만용을 부리는 소비자. 2013년을 준비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짚어봐야 할 얼굴이다.
신안군 소식을 접하며 또 다른 두 가지 요소에서 반가웠다. 먼저 신안군을 이끌고 있는 박우량 군수가 정당에 소속된 관료가 아니면서 재선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낯 모르는 신안군민들이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대목이다. 두 번째는 이 소식을 전한 오마이뉴스가 반가웠다. 정치 관련 뉴스로 지면이 뻔하게 도배되는 이 때에 미디어다운 취재를 했다. 소외되기 쉽고, 폄하되기 쉬운 사회의 단면을 잘 부각시켰지 싶다.
"관광객 안 와도 좋다. 규제 심하고 불편한 섬 만들겠다"는 박우량 군수의 한 마디에 2013년의 트렌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바로 핵심가치다. 자연유산의 핵심가치, 군수란 지위의 핵심가치, 시민의 핵심가치가 선명하다.
/박상진 인터패션플래닝(www.ifp.co.k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