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옷은 무슨…. 경기가 이런데, 멋 부릴 여유가 어디 있어요?"
요즘 옷과 가방, 신발이 안 팔린다. 포스코와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발 구조조정 소식에다 향후 경기 전망까지 어둡다보니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버티고 있다.
3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와 통계청에 따르면 의류업체 LG패션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89억원으로 지난해(91억원)보다 2.4%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LG패션은 올해 들어 3분기 연속 실적이 고꾸라지는 중이다.
노스페이스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는 영원무역홀딩스는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가 105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20억원)보다 3.2% 늘어나는 데 그쳤다. 2분기에 적자(22억원)로 돌아선 진도 또한 3분기 실적 전망이 낙관적이지 않다.
의류업체들의 마이너스 성적표는 최근 달라진 소비패턴에 직격탄을 맞은 결과다. 유행을 따라 일정 기간마다 새 옷이나 잡화를 사던 돈을 줄이고, 있던 것을 고쳐 쓰며 짠맛 나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씀씀이가 큰 디파짓(deposit)족들마저 발길을 돌리고 있다. 디파짓족들은 뭉칫돈을 매장에 먼저 맡긴 뒤 수시로 옷을 사가는 이들로 백화점 의류매장에서 VIP로 대접받는다.
올 초까지만 해도 백화점 여성브랜드 A매장에 500만원씩 맡겨두고 옷을 사던 직장인 이희선(34)씨는 이제 더 이상 백화점을 찾지 않는다. 이씨는 "업무상 좋은 옷에 신경 썼는데, 요즘은 옷장을 뒤져 작년에 산 걸 다시 입고 있다"며 "요즘은 돈 있는 사람이 비싼 '신상'을 사는 게 아니라 속없는 사람이 사는 것이라고들 생각한다."고 말했다.
니트의 몸통을 잘라 스커트로 만들고, 오래돼 촌스러워진 재킷의 깃을 뜯어내 트렌디하게 만드는 리폼의 매력도 여성들의 눈을 잡는다.
리폼에 대한 관심이 늘자 여성들이 주시청자인 케이블채널 스토리온의 '이승연과 100인의 여자'에선 방청객들의 옷을 즉석에서 리폼하는 노하우를 선보여 호응을 얻기도 했다. 아이파크백화점에선 직접 리폼을 하려는 이들이 많아지자 재봉틀을 판매하는 매장을 열고 재봉 강습까지 진행하고 있다.
옷은 물론이고 가방, 신발 등 몇 년에 한 차례씩 교체하는 준내구재의 소비 또한 크게 줄어든 상태다. 지난 8월 준내구재 소비 증가율은 지난해보다 4.2% 떨어지며 44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최근 가을세일을 끝낸 백화점들의 성적표도 저조하다. 현대백화점에선 남성·여성의류 매출이 2~5%까지 추락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아웃도어 상품 매출이 늘었지만 이월상품을 할인해 파는 행사상품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알뜰한 차선책을 주목하는 소비스타일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트렌드를 연구하는 김난도 교수(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는 자신의 책 '트렌드코리아 2012'에서 불안한 경제 속에서 두드러지게 되는 소비스타일을 '플랜B 경제'라고 정의했다.
그는 "경기침체와 고용불안이 상시화 되는 시대에는 가격을 보는 시각이 달라져 비싸지만 품질이 아주 조금 나은 플랜A 제품보다 싸지만 매력 있는 플랜B 제품을 선택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쪽으로 진화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