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내 성희롱을 당하고도 전전긍긍했던 피해자들의 대처가 적극적으로 바뀌고 있다.
소극적인 대처로는 성범죄 피해를 막을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물론 인터넷을 통해 피해사실을 사진과 함께 직접 알리는 등 직접 구제에 나서는 여성이 늘어나는 중이다.
지난 10일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A씨는 '팔꿈치 성희롱'이란 게시물을 올렸다. 그는 "장한평역에서 오른쪽에 앉은 어떤 아저씨의 팔꿈치가 가슴 옆쪽에 닿아 불쾌했다"고 적었다.
A씨는 곧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그 남성이 옆자리에 앉은 또 다른 여성 B씨에게 똑같이 팔꿈치로 가슴께에 접촉하는 것을 목격하고 사진을 찍어 공개했다.
앞서 여대생 임모(21)씨는 지난 7일 지하철 2호선 사당역 전동차 안에서 김모(66)씨부터 "넌 XX빵 하기 딱 좋아"라고 성희롱을 당하자 김씨의 얼굴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 도착역 인근 파출소에 신고했다.
경찰이 얼굴 사진만으로는 가해자를 찾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자 임씨는 인터넷 게시판에 '성희롱 할아버지'라는 제목으로 공개수배를 요청했다. 이 게시물이 화제가 되면서 김씨는 사건 발생 3일 만인 지난 11일 경찰에 붙잡혔다.
성희롱 사건이 사회 이슈화되자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는 여성도 느는 추세다. 여성 호신용품 구매가 대표적이다. 쇼핑몰의 관련 상품 매출은 300~400% 가까이 상승했다. 여성들이 주로 찾는 호신용품은 호신용 가스총, 보안경보장치 등으로 가격대는 2만~10만원으로 다양하다.
지하철 경찰대 소속 경찰들이 만든 '직접 지하철 성추행범 단속 후 얻은 대처법'이란 게시물을 클릭하는 이들 역시 늘고 있다. 이 게시물에는 수상한 남성이 뒤쪽으로 다가올 경우 등을 보이기보다 45도 각도에 서라는 조언 등이 담겨있다.
여성계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의 단호한 대처와 함께 성희롱을 분명한 범죄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 활동가는 "성희롱을 두 사람간의 문제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흉악범죄를 키우고 있다"며 "성희롱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발생하면 피해자 주변에서 적극적인 도움의 손길을 뻗어야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하철 보안관을 크게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2호선 신촌역의 이승일 역장은 "신도림~강남 구간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역에는 사복경찰이 잠복해 질서를 잡고 있지만 모든 역에 적용하긴 힘든 게 현실"이라며 "지하철 보안관을 늘려 꾸준히 단속하는 동시에 성희롱 범죄 방지 홍보 등을 통해 범죄 예방에 나서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1~9호선에 170명의 지하철 보안관이 활동하고 있다"며 "보안관을 늘려달라는 민원이 많은 만큼 보안관 증원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유리기자·장윤희기자 grass100@metroseoul.co.kr
■ 경찰이 말하는 성추행 대처법
1. 가파른 지하철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가방을 뒤로 매거나 손에 든 책을 등 뒤쪽으로 한다. 급경사 계단 등에서 찍히는 '지하철 몰카'를 피할 수 있다.
2. 가벼운 신체 접촉이라도 현장에서 즉시 불쾌한 반응을 보이며 대응한다. 더욱 과감한 범행을 막을 수 있다.
3. 혼잡한 지하철에서는 가급적 제일 앞쪽이나 뒤쪽 칸을 이용한다. 성추행범은 도주로 확보가 쉬운 가운데 칸을 주로 이용한다.
4. 문자메시지로 112에 신고한다. 문자메시지로 어느 방향으로 가는 몇번 열차 몇번째 출입문 등 정확한 위치와 용의자가 입은 옷 등 인상착의를 자세히 적는다.
5. 낯선 남성이 자신의 뒤쪽으로 다가오면 45도 각도를 위치해 선다.
6. 다른 자리로 옮기거나 주변 상황을 살펴 큰 소리로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다.
7. 적극 신고한다. 증인이 없어도 무혐의로 판단하지 않는다. 망설이지 말고 신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