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점심시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로비. 회사 명찰을 목에 건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정오의 오페라' 강좌를 듣기 위해 점심도 샌드위치로 떼운 수강생들의 얼굴에는 강의 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
◆ 도심공연장 무료공연 풍성
강의를 들은 직장인 한지연(31)씨는 "퇴근 후엔 회식도 많아 시간이 여의치 않았는데, 점심시간을 활용해 교양도 쌓고 업무 스트레스도 풀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한씨처럼 반복되는 일상이 싫증 난 직장인들이 틈새 공연과 강좌로 팍팍한 삶에 숨통을 틔우고 있다.
도심의 주요 공연장들은 인근 직장인들이 자투리 시간에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샌드위치 강좌'로 통하는 정오의 문화강좌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세종문화회관은 2007년부터 '정오의 문화예술 강좌'를 열고 있다. 낮 12시부터 1시간 동안 '정오의 클래식' '정오의 오페라' '정오의 미술산책'을 요일별로 나눠 진행한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시간을 내기 힘든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대 강좌나 공연은 인기"라며 "짧은 시간 안에 문화예술 소양을 쌓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클래식 공연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서울시향과 함께 한 달에 한번 오전 11시50분부터 1시간 동안 '오박사의 재미있는 클래식' 공연을 개최한다. 정동극장은 봄, 가을시즌에 낮 12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야외무대에서 무료 전통공연을 개최한다.
LG아트센터는 '러시아워 콘서트'를 기획했다. 클래식, 힙합, 현대음악 공연이 펼쳐지는 공연장에는 퇴근길 콩나물 시루를 피해 귀가하려는 직장인 관객 비율이 전체의 70%를 넘을 정도로 호응이 좋다.
◆ 악기배우며 스트레스도 날려
퇴근 후 저녁시간 만큼은 오롯이 자기만을 위해 투자하고 있는 직장인들도 많다.
김형준(33)씨는 일이 끝나면 서울 연남동 주택가 골목에 자리한 작은 커피집으로 향한다. 바리스타 자격증에 도전하기 위해 핸드드립 커피 강좌를 알아보다 이 곳을 알게 된 김씨는 "좋아하는 커피를 배우는 시간만큼은 회사 스트레스를 잠시 잊을 수 있다"며 "매일 저녁 은은한 커피향을 맡는 것이 생활의 활력소가 됐다"고 말했다.
무기력증에 빠졌던 광고디렉터 황정민(37)씨 또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우크렐레를 배우면서 삶이 180도 바뀌었다. 황씨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억지로 짜내느라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는데, 악기에 몰입하면서 사고가 자유로워지고 업무 효율도 올랐다"며 즐거워한다.
이처럼 '평생직장'의 의미가 사라진 요즘, 퇴근 후 시간을 새 인생을 설계하는 발판으로 활용하는 직장인들이 늘어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는 재테크 강좌와 와인 소믈리에, 제과·제빵 자격증 취득 과정 등 생계형 강좌가 인기다.
컵케이크 전문점 창업 과정을 수강 중인 한수연(35)씨는 "40대가 되기 전 취미를 살려 제과점을 낼 계획"이라며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제2막을 생각하면 즐겁다"고 말했다.
/박지원·권보람기자 pjw@metroseoul.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