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면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넌 어쩜 달라진 게 없니”라고 해도 대개 속내는 “허걱, 너 진짜 늙었다”이다. 그 얘기를 굳이 안 하는 이유는 상대에 대한 매너임과 동시에 나 자신의 나이 듦을 회피하려는 꼼수다.
흥미로운 것은 엇비슷하게 외모가 나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지만 저마다 엇비슷하게 그간 한 번쯤은 자신을 뿌리째 뒤흔들 만한 인생의 시련 같은 것을 겪고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점이다.
성장배경과 무관하게 다소 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그 시련은 꽤 공평하게 모두에게 배달되는 듯하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병마나 경제적 실패, 재능과 가능성에 대한 좌절 같은 것 말이다. 그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행여 그걸 겪지 않은 사람이 진짜 있기라도 한다면 그의 앞날이 우려된다. 얼마나 크게 무너져 내릴까.
어쨌든 옛 친구들은 요새 하나 둘씩 마흔에 입성하면서 그간 살아온 인생성적표를 점검하고 공유하는 의식을 치른다. 어떤 친구들은 ‘지금의 나’가 차라리 더 예쁘고 괜찮고 좋다고 말하는가 하면, 좋았던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며 지금의 나이 듦을 끔찍해 하며 앞날을 두려워하는 친구들도 있다.
다들 똑같이 저마다의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시련을 겪고 관통하며 이 나이까지 버티고 살아냈는데 대체 이 태도의 차이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전자의 친구들은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스스로를 조롱할 수 있는 능력과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고, 어떻게든 그 괴로운 틈새에서 재미(Fun)를 추구해왔기 때문인 것 같다.
인생이 어차피 근본이 허망하고 고된 일의 연속이라면, 틈새로 ‘재미’를 찾아내는 능력이 없다면, 그저 매뉴얼대로 나이 듦의 수순을 밟아가는 것 말고는 제공되는 게 없다. 그리고 나이 듦은 아무리 지혜니 연륜이니 하며 미화해도 기본이 슬프고 고통스럽다.
영화 ‘써니’의 한 때 껌 좀 씹던 7공주였던, 지금은 40대 아줌마들이 다 늙어(?) 오만 푼수 짓을 해도 저들이 신나고 좋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인생은 찰나이고, 틈날 때마다 재미있게 살아내는 게 사실은 남는 장사다./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