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한국HP의 신제품 노트북 발표회장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90㎏의 육중한 체격의 배윤 부장이 이날 첫선을 보인 ‘엘리트북 p시리즈’ 위로 성큼 올라섰기 때문.
항공기 제작기법을 응용해 만든 노트북 덮개가 최대 136㎏의 압력을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어 배 부장은 노트북 위로 물을 쏟아부었다.
이 역시 노트북 바닥에 설치된 배출구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날 기자들의 머릿속엔 제품의 장점이 단숨에 인지됐다.
IT 무한경쟁 시대에 자사 제품의 장점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공개시연이 새 마케팅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경쟁사를 공개적으로 깎아내리는 것이 금기시되던 국내 기업 정서에도 기자들을 불러모아 비교시연까지 자처하기도 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이 제품마다 중첩되면서 기술 우위를 말이나 글로만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서다.
28일 소니엑스페리아는 최신 스마트폰 ‘엑스페리아 아크’를 공개하는 자리에 상자모양의 암실을 준비했다. 어두운 환경에서도 밝고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엑스모어 R’ 기술을 경험해보라는 의도에서다.
기자들은 자신의 스마트폰과 ‘엑스페리아 아크’로 번갈아 상자 속을 비추면서 제품의 탁월함을 확인했다.
이 같은 시연 마케팅은 최근 3D TV를 두고 삼성전자와 LG디지플레이가 벌인 자존심 대결에서도 확인된다. 서로 자사의 기술이 우수하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경쟁 제품을 가져다 직접 화질과 3D 구현 능력 등을 비교 평가했다.
앞서 한국앱손도 이달 초 잉크젯 프린터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경쟁사의 레이저 프린터를 가져다 출력속도를 비교 시연했다. 덕분에 기자들은 ‘레이저가 잉크젯 프린터보다 당연히 빠를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방법은 독자적인 기술 우위를 제시할 때는 유용하지만 비슷한 성능을 비교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사 제품에 최적화된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조작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삼성과 LG의 3D TV 비교 시연 역시 외부 자연광의 차단 여부에 따라 화질의 차이가 나서 공정성에 의심을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비교시연은 객관적으로 믿을 만한 조건 아래 이뤄져야 논란 없이 소비자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