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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교동 인씨의 시조 인빈(印 )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인 교동 인씨(喬桐印氏)는 ‘좌씨전(左氏傳)’에 그 유래가 기록되어 있다. 중국 정(鄭)나라 목(穆)의 자손 중에 자장(子張)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 단(段)이 조부의 이름인 자인(子印)의 인(印)자를 따서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의 후손 인서(印瑞)가 신라에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한 것이 우리나라 인씨의 시조라 한다. 그러나 실제의 시조는 인빈(印 )으로 그는 고려시대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한림학사를 거쳐 문하시중(현재 국무총리)에 올랐고, 교수부원군(喬樹府院君:오늘날의 교동)에 봉해졌으므로 그의 후손들이 강화군 교동(喬桐)을 본관으로 삼았다.

역옹패설에 의하면 인빈은 문장이 당대 선비의 으뜸이었다. 이인로와 서거정도 그를 높이 평가하여 중국의 이태백과 소동파에 뒤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가 남긴 오언시가 동문선에 전해진다.

“초당의 초가을에 가을비 내리는 한밤중, 깊은 잠에 빠진 나그네는 꿈도 꾸지 않네. 창밖에는 벌레 우는 소리 들리는데, 비단 같은 잔디 위에 빗방울이 어지럽게 떨어지네. 차디찬 낙엽주는 아직도 맑아 나는 그윽한 취흥이 도는데, 자네도 지금 가을 정취를 알겠는가?”

인빈의 호가 초당(草堂)이고, 경기도 고양군 남쪽으로 15리 떨어진 호숫가에 초당을 짓고 살았으며, 부근의 소화사 남쪽 누각에 친필로 된 한시를 남겼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인빈의 아들 인완(印完)은 형부상서를 거쳐 문하시중 평장사에 올랐고, 손자 인규(印珪)가 판이부상서를, 증손 인현원(印玄元)이 응양위 대장군을 거쳐 호부상서를 그리고 현손 인정(印貞)은 평장사를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다.

후손 중에는 고려 말에 활약한 인당(印 )이 있다. 인당은 1354년에 전라도 만호로서 왜구를 무찔렀고, 이듬해에는 홍건적(紅巾賊)을 격퇴하였다. 1356년에는 서북면병마사가 되어 쌍성총관부를 탈환하는 데 공을 많이 세웠다.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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