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 이브가 금요일이라니, 소싯적 악몽의 크리스마스 이브가 생각난다.
10여 년 전의 그때도 크리스마스 이브가 금요일 밤이었다. 금요일에다가 크리스마스 이브이니 청춘남녀는 삼바 파티라도 열어야 마땅했던 분위기. 그러나 아직 눈가 주름조차 없던 그 시절, 나는 솔로였고 이브 날 아무 약속이 없었다. 몇 있던 여자친구들도 하필 다 애인이 있었고 더 이상 매달리자니 너무 초라해질 것 같았다.
그럼에도 오전에 나는 “오늘 저녁에 뭔 일 있어요”를 암시하듯 옷장에서 가장 ‘블링블링’한 옷을 입고 출근을 감행했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괜히 화장실을 몇 번을 오가며 화장을 잔뜩 고쳐놓고 일부러 서두르듯 잰걸음으로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사무실 사람들을 남겨놓고 나와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째. 갈 곳은 서늘한 원룸밖엔 없는 걸. 하필 지하철역까지 가려면 젊은이들이 넘쳐난다는 번화가를 관통해야 했다. 사람들은, 아니 커플들은 이미 대거 방출되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 많은 사람 중에 혼자 걷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넌 남자도 없냐?” “뭐하니? 어서 빨리 집에 들어가서 찌그러져 있지” 같은 환청이 들렸다.
인파에 떠밀리듯 걸음을 조금씩 옮기면서 옆에서 걷고 있는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과 마치 일행인 척하며 나란히 걸으려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는 정말 흠칫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원룸에는 먹을 게 하나도 없어 피자를 시켜먹는데 혼자인 거 들통 날까 봐 라지 사이즈로 주문했다가 제대로 체해서 주말 내내 고생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이젠 “난 혼자가 아니야”를 더 이상 연출할 필요가 없게 되었지만 과거의 웃기고도 슬픈 경험들 때문인지 매년 크리스마스가 돌아올 때마다 갈 곳 없는 싱글들의 절박하고 생뚱한 마음에 여전히 가슴이 아릿해져 온다. 거리를 걷다 보니 모 대형 제빵업체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슬로건이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라서, 그 역설적인 의미에 감탄하며 이 글을 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