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와준) 전쟁은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이 한국과 미국의 침락에서 시작됐다는 뉘앙스를 담은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의 발언 파장이 만만치 않다. 항미원조전쟁은 한국전쟁을 일컫는 중국의 공식적인 명칭이다. 시 부주석은 중국 군의 한국전쟁 참전 60주년 기념일인 지난 25일 참전 노병들과 만나 문제의 발언을 꺼냈다.
한국과 미국은 즉각 시 부주석의 ‘역사 인식’을 문제 삼았다. “6·25가 북한의 남침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검증된 역사적 사실”이라며 시 부주석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꼬집었다.
사실 중국에서도 이미 6·25가 김일성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은 광범위하게 인식되고 있다.
한국전쟁사 전문가인 선즈화 화둥사범대 교수 등은 기밀이 해제된 옛 소련의 외교문서 등을 뒤져 김일성의 남침을 중국 내에서 공론화하기도 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전까지 “항일원조전쟁은 남조선과 미 제국주의의 침략에서 비롯됐다”던 교과서 내용도 수교 이후에는 “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내전이 발생했다”며 북침 및 남침에 대한 판단을 얼버무렸다. 학계 일각에선 마오쩌둥 전 주석의 참전 결정 판단이 잘못됐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왜 시 부주석은 갑자기 ‘침략’이라는 용어를 사용, 한·미 양국의 반발을 자초했을까.
시 부주석의 발언은 노병들과의 좌담회에서 나왔다. 그들의 동료 18만여 명이 한반도에서 전사했다. 그들의 참전이 정당했다는 점을 강조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중국은 요즘 북한과 최고의 밀월관계를 구가하고 있다. 북한은 이번에 중국 군 참전 60주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면서 중국과의 ‘혈맹관계’를 강조했다. 시 부주석으로선 이에 대한 화답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천안함 사태 이후 한반도 주변정세가 60년 전과 마찬가지로 ‘한·미’ 대 ‘북·중’의 대결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것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중국 내에서 강경파 군부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때마침 시 부주석은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선임된 뒤 첫 행사로 이번 좌담회를 주재했다.
중국 측이 시 부주석의 발언을 조기 수습하는 양상이지만 중국 내에서 애국주의가 확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항미원조전쟁에 대한 개념 규정 논란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판단이다.
/베이징=박산하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