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인 애나 테일러는 남자친구 폴과 싸우고 식당에서 뛰쳐나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깨어나 보니 그는 병원 대신 장의사 침대 위에 누워 있고 이마에는 흉측한 상처를 입고 있다.
장의사라는 엘리엇 디콘이라는 남자는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장비를 놀리면서, 애나가 교통사고로 죽었으며 사흘 뒤에 장례식과 함께 매장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여러분 같으면 이 말을 믿고 싶겠는가? 죽었다면 어떻게 엘리엇 디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는가.
2일 개봉된 ‘애프터 라이프’의 도입부는 불가해하다. 더 불가해한 것은 이 불가해한 도입부의 설정을 전개하는 과정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이야기는 둘 중 하나로 끝나야 한다. 애나가 정말 죽었고 디콘은 ‘식스 센스’의 꼬마처럼 죽은 사람과 대화하는 초능력이 있다. 아니면 애나는 미치광이 장의사에게 감금되어 곧 산 채로 매장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연출과 시나리오를 맡은 아그니에츠카 보이토비츠-보슬루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양쪽 가설을 드러내놓고, 그들을 지지하는 단서와 증거들을 골고루 뿌린다. 덕택에 인터넷에서는 아직도 두 가설들 중 어느 쪽이 진짜인가를 주장하는 글들이 꾸준히 올라온다.
답을 말하자면, 그건 큰 의미가 없는 토론이다. ‘애프터 라이프’는 닫힌 결론을 주장하는 영화가 아니다. 반대로 영화는 고의로 주인공을 이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위치한 혼란스러운 영역 안에 가두려 한다. 그 중간지대에서 삶과 죽음, 특히 삶에 대해 묵상한다.
과연 특별한 목적도, 갈망도 없이 가까스로 현상유지만 하는 현대인의 삶을 진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은 교통사고로 죽어 장의사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죽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진짜로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주연배우 크리스티나 리치와 리암 니슨은 이 단순하지만 묘한 스릴러 영화에 정확한 연기를 보여준다. 광기와 명쾌한 논리를 자신의 연기에 동시에 담아내는 니슨이 없었다면 영화의 황당한 설정은 의미를 잃었을 것이다.
리치의 기괴한 미모와 매너리즘은 영화의 노골적인 네크로필리아적 설정에 힘을 실어준다. 이들에게 주어진 드라마가 조금만 더 조밀했다면 영화는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