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LG가 자동차 전장 사업 주도권을 두고 경쟁 구도를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기술력을 앞세워 미래차 두뇌를 빠르게 장악하는 가운데, LG는 디스플레이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평가다.
◆'두뇌'는 삼성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2017년 340억달러에서 2022년 553억달러로 2배 가까이 성장할 전망이다. 자동차가 빠르게 '전자화'되고 있는 데다, 2020년께 자율주행차도 본격적으로 판매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차량 1대당 탑재되는 반도체가 2000개 가량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4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 들어 차량용 반도체 라인업을 완비하면서 시장 진입을 본격화했다. 지난 4월 출시한 차량용 16Gb D램이 시발점이다. 10나노급 공정을 적용한 LPDDR4X D램으로, -40℃(도)에서 125도까지 견딜 수 있는 '오토그레이드1'제품이다. 속도도 14%, 소비 전력 효율도 30% 높였다.
지난달에는 AP 라인업인 '엑시노스 오토'도 공개했다. AP는 연산처리장치로 자율주행에 필수적인 부품이다. 엑시노스의 처리 능력을 이어받으면서도, 내구도와 안정성을 높였다. 아직 특별한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어서 삼성전자가 시장을 빠르게 선점할 것으로 기대된다.
엑시노스 오토와 함께 소개된 아이소셀 오토는 차량용 이미지 센서다. 자율주행차가 주변을 인식하게 하는 눈과 같은 역할을 한다. 셀 간 간섭을 최소화해 작은 픽셀로도 고품질 이미지를 구현하는 '아이소셀' 기술을 탑재했다. 전세계 이미지 센서 시장은 소니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아이소셀 오토는 삼성전자가 소니의 점유율을 뺏어올 수 있는 미래 무기로 주목을 받고 있다.
LG전자는 쉐보레 볼트EV에 모터와 배터리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11개 부품을 공급했다. /쉐보레
◆'심장'은 LG
LG는 미래차 시장에서 심장을 책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에 필수적인 모터와 배터리 부문에서다.
모터는 LG전자가 자랑하는 전장사업 분야 중 하나다. 전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원천기술 보유사다. 인버터와 더블드라이브 등 신기술도 다수 보유 중이다. 세탁기와 청소기 등 가전을 통해 인정받은 기술을 기반으로, 전기차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배터리팩도 LG전자 주력 제품 중 하나다. LG화학이 만든 배터리를 완제품 형태로 납품한다. LG화학이 높은 배터리 생산 기술을 보유한 만큼, 자동차 업계 선호도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LG전자는 이를 활용해 미국 GM이 만든 첫 2세대 전기차인 쉐보레 볼트EV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기도 했다. 올 초에는 미국 미시건주에 전기차 부품 공장을 설립하고 미국 현지 전기차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지난 4월에는 오스트리아 헤드램프 기업인 ZKW를 인수하면서 전장사업 확대를 시사했다.
LG전자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서도 강점을 보인다. 볼트EV에 이어 최근 공개된 제네시스 G90에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공급하게 되면서다. 메르세데스-벤츠와 재규어·랜드로버, 볼보 등도 고객사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LG디스플레이가 큰 역할을 맡았다. 업계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는 6분기 연속 자동차용 5인치 이상 LCD 디스플레이 시장 1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달 열린 한국디스플레이산업전시회에서는 플라스틱 OLED를 활용한 미래형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올 들어 엑시노스 오토와 아이오셀 오토 등 차량용 반도체 출시를 본격화했다. /삼성전자
◆경쟁 이제부터
단, LG전자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독점하는 상황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작년 글로벌 전장기업인 하만을 인수하면서 시장 경쟁력을 크게 제고한 바 있다.
'디지털 콕핏'은 삼성전자의 미래차 인포테인먼트 공략 전략을 엿볼 수 있는 모델이다. 올 초 미국에서 열린 'CES 2018'에서 공개된 것으로, 대시보드 전면에 디스플레이를 활용하고 스마트싱스로 연결성을 대폭 강화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배터리 시장에서도 삼성전자는 빠르게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삼성SDI는 8월까지 배터리 출하량이 1321㎿h로 LG화학(2749㎿h)에 크게 뒤쳐져있다. 하지만 최근 현대차와 협업을 검토하는 등 다양한 성장 전략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율주행 기술에서도 양사는 선의의 경쟁을 이어갈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올 초 자율주행 솔루션 '드라이브 라인' 플랫폼을 공개한 데 이어, 최근에는 현대차와 KT와 협력해 만든 첫 5G 자율주행차를 공개했다.
LG는 AI 연구와 더불어 자율주행 상용화에도 힘쓰고 있다. 로보티즈와 자율주행 모듈 개발을 계약하고, 이마트에 자율주행 카트를 공급했다. LG이노텍이 12일 국내 최초로 LTE 기반 차량용 통신모듈 C-V2X를 개발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힘을 합치기도 한다. 자율주행 국제 표준화를 위해서다. 양사는 지난 8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출범한 '자율주행차 표준화 포럼'에 동참해 2021년까지 국제표준 20건을 제안하는 노력을 들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