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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원고료 2만원의 충격

홍경한(미술평론가)



몇 해 전, 모 지자체가 주최하는 미술행사의 주요 위원직을 맡은 적이 있다. 행사전반의 운영방향을 결정하고 예산까지 들여다보는 막중한 자리였다. 하지만 1년 만에 그만둬야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 권력을 쥔 핵심인사에게 밉보여 그의 '패밀리'에서 제외되었다는 게 맞겠다.

당시 감정을 글로 옮기자면 그야말로 '씁쓸하거나 홀가분하거나'였다. 어딜 가나 존재하는 계파와 코드, 지연과 학연을 배경으로 한 패거리정치의 민낯에 씁쓸했고, 수정되지 않을 것을 느끼면서도 매번 부딪히고 좌절하던 과정을 그만해도 된다는 점에선 홀가분했다.

책임의 무게에 미치지 못하던 대가의 불균형을 더 이상 체감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도 미련에서 멀어진 이유였다. 물리적 거리만 해도 하루를 온전히 소비해야 하는데다, 몇날 며칠의 연구와 고민을 거쳐 서너 시간 이상 회의 또는 토론에 임한 보수치곤 매우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이 중 미술매개자들을 대상으로 한 저임금 노동구조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 4월 정부까지 나서 '미술진흥중장기계획'을 발표하며 비평가에 대한 처우개선 및 양성 기조를 밝혔지만 한해가 저무는 오늘까지도 달라진 건 별로 없다.

여전히 6000원 수준의 고료를 책정한 채 평론을 청탁하는 정부 및 지자체 산하기관이 드물지 않고, 각종 수당 역시 겨우 몇 만원에 불과한 곳도 수두룩하다. 심지어 한 달 내내 작성한 평론을 보냈더니 원고료로 달랑 2만원을 입금해 충격을 안긴 지역재단도 있다.

살아가는 곳은 현실인데 노동의 대가는 초현실주의적인 현재를 말하면 혹자는 '안하면 그만이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그렇다. 그런데 스스로도 민망해서인지 기관 담당자들은 대체로 섭외 승낙 후 또는 현장에서야 상세한 안내를 한다.

설사 알게 된들 돈 몇 푼에 연연하는 쫀쫀한 사람인 냥 취급될 듯싶어 평론가들의 다수는 노동의 값이 얼마인지는 따지지 않는다. 원체 돈 얘기를 꺼리는 미술계 분위기에다 무언가에 기여한다는 사명감, 책임감, 역할론 따위가 대두될 경우 마음과 달리 입은 더욱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아니다싶어 공식적으로 항의한 경우도 있다. 전업비평가가 손에 꼽히는 상황을 인지한다면 현재의 얼토당토않은 보수체계는 개선되어야 마땅하고, 그러하지 못한다면 훗날 후배들에겐 선배들의 사례가 하나의 원칙으로 적용될 것이란 판단에 책임과 역할에 상응하는 대가를 달라고 요구한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기관 관계자들은 '행정'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개인적으로야 턱없이 부족함을 이해하지만 그 더디고 복잡하며 개념 없는 행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보니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정을 바꿔야 옳은데 그조차 쉽지 않은 모양이다.

미술계 생태를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행정이 전문성을 떨어뜨린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보수를 외면하는 정책자들의 낙후된 인식은 관련 인적 기반을 위축시키고 많은 부분을 아마추어화 한다. 물론 짜들은 인적 기반은 한국문화예술의 질적 경쟁력 면에서도 좋을 게 없다. 그러나 우리네 행정은 이런 자각에 인색한 게 사실이다.

공공기관들은 열정과 애정을 빌미로 한 재능기부라는 병풍 속에 전문가들을 앉히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 제대로 된 소명의식을 원한다면 그에 합당한 대우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그러려면 무엇보다 누군가의 경험과 지식, 노동과 시간은 공짜가 아님을 상기해야 한다. 특히 초라한 대가와 직함을 교환하느라 짐짓 모른 체 해온 미술계 문화곡예사들 또한 스스로를 성찰해야 옳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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