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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홍경한의 시시일각] 지하철 공공미술의 문제

홍경한(미술평론가)



1974년 1호선이 첫 개통한 이래 40여년 이상 따분하고 무미건조한 공간으로 남아 있던 지하철에 심미성을 담보로 한 각종 미술작품들이 들어서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추진 중인 '문화예술철도'처럼 이미 구체적으로 실행절차를 밟고 있는 예도 발견할 수 있다.

지하철이 생활 속 문화공간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새로운 문화적 환경에 대한 도시민들의 욕구와 높아진 문화수준 및 향유에 관한 권리, 공공의 장소를 시각적으로 쾌적하게 만들어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려는 일부 지자체장들의 정치적 의도 등이 복합적으로 놓여 있다.

즉, 더 이상 물리적인 기능으로서의 도시 환경에 만족하지 않게 된 시민의식의 변화와, 갑갑한 미술관에 들어앉은 권위적인 미술에 수동적이지 않은 문화태도, 임기 내 무언가 눈에 띄는 정책을 통한 치적을 갈망하는 정치인들의 욕망이 지하철 공공미술 확대와 유속을 빠르게 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뜻 없이 정해놓은 지하철 노선도의 색깔처럼 정작 '미술'의 수용방식은 매우 단선적이다. 공공미술이 일상 속에 녹아든 시민 소통의 예술이라지만 어설플 땐 그저 '공해'일 뿐임을 증명하는 사례도 없진 않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미술을 '장식'으로 보는 정책자들과 기획자들의 시각이다. 이는 미술을 공간을 위한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실제로 건축물 미술작품제도가 그러하듯 지하철 미술의 적지 않은 수는 '환경미화'에 준한다. 미술이라는 언어를 통한 사회적 담론의 기제로 기능해야 하는 공공적 관심으로서의 미술과는 거리가 멀다.

미술의 접목을 '공공의 선'으로 착각하는 정치인들의 욕망도 문제이다. 이렇게 설치했으니 그렇게 느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시민들의 문화적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둔갑하고, 그 기대감은 다시 치적이 되어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토대가 될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 의해 강조되는 것은 미술로부터의 어떤 극적인 발화일 뿐, 미술 특유의 사회적?문화적 의제로서의 기능과는 무관하다. 그러다보니 창의적 문화생태계 조성이라는 그럴싸한 텍스트를 내세우고 있음에도 결과물은 늘 인공성이 넘치는 도시에 또 하나의 가공된 조경과 차갑고 인위적인 미술형식이기 일쑤다.

결국 지하철 공공미술의 현재는 관련법과 정책에 의해 인위적으로 이식된 제도적 공공성과 지역성이 간신히 결합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설치-감상'이라는 단순한 코드에서 자유롭지 못할뿐더러, 물리적인 완성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물론 사회공동체의 이슈를 시민 스스로 창출하는 단계엔 이르지 못한다.

그나마 지하철을 죽은 지하공간이 아니라 예술생산과 소비를 잇는 문화예술의 교량으로 바라보는 건 다행이다. 허나 지하철 공공미술이 나아갈 방향은 미술의 장식성을 벗어나 개인과 지역, 공동체 간 창의성과 통합성을 내세우는 문화적 공공성의 실현에 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미술을 매개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발언하며, 시대적 사안에 대해 논하는 공론의 장이 공공미술임을 기억해야 한다. 미술을 매개로 한 생산적 문화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공공미술의 참다운 역할이자 가치임을 상기해야 한다. 결과물은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조형에 불과한데도 온갖 미사여구와 의미를 덧칠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 아니라.■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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