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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27) 친일파가 지어 독립운동가가 살다간 곳··· 한국 근현대사 관통하는 '백인제 가옥'

최종수정 : 2018-09-04 15:27:46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는 북촌에서 두 번째로 큰 한옥인 백인제 가옥 이 있다. 김현정 기자
▲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는 북촌에서 두 번째로 큰 한옥인 '백인제 가옥'이 있다./ 김현정 기자

서울 종로구 북촌로 7길에는 '고래 등 같은 기와집' 하나가 우뚝 솟아있다.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지어진 가옥은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파 재력가였던 한상룡이 1913년 일대 한옥 12채를 사들여 지은 저택이다.

마지막 주인의 이름을 따 '백인제 가옥'이라 불리는 저택은 전통양식과 일본양식이 접목된 근대 한옥이다.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은 2460㎡ 대지 위에 압록강에서 공수한 흑송을 재료로 최대 규모의 최고급 가옥을 세웠다.

서울역사박물관은 100년 전 서울 상류층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백인제 가옥을 역사가옥박물관으로 조성해 지난 2015년 시민에게 개방했다.

◆전통방식에 일본양식 접목한 근대한옥

지난달 24일 백인제가옥을 찾은 시민이 사랑채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김현정 기자
▲ 지난달 24일 백인제가옥을 찾은 시민이 사랑채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김현정 기자

지난달 24일 북촌에서 두 번째로 큰 한옥, 백인제 가옥을 방문했다. 가회동 주민센터에서 정독도서관 쪽으로 난 골목으로 100m 정도 들어가자 먹색 기와의 높다란 대문이 보였다. '백인제 가옥'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대문간채는 조선 사대부가에서 사용한 솟을대문 형식으로 지어졌다.

당대 최고 권력가 한상룡의 위세를 짐작게 하는 거대한 대문간채를 지나자 또 하나의 문이 나타났다. 중문간채라 불리는 두 번째 문을 통과하자 탁 트인 마당과 함께 사랑채와 안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인제 가옥 안채 바닥은 교체가 쉬운 우물마루가 깔려 있다. 김현정 기자
▲ 백인제 가옥 안채 바닥은 교체가 쉬운 우물마루가 깔려 있다./ 김현정 기자

백인제 가옥 해설사의 안내를 따라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로 들어갔다. 가옥 안채의 대청과 툇마루는 모두 우물마루로 구성되어 있었다. 해설사는 "우리나라는 봄은 건조하고 여름은 습한 계절적 특성을 갖고 있어 나무 바닥이 잘 썩는다"며 "바닥을 쉽고 편리하게 교체하기 위해 우물마루로 만든 것이다"고 설명했다.

백인제가옥은 전통한옥과 달리 안채와 사랑채가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밖에서 보면 'ㄷ'자 모양처럼 보였다. 사랑채의 툇마루와 복도에는 장마루가 깔려 있었다. 해설사는 "사랑채는 한상룡이 일본 고위인사들과 연회를 즐기던 곳으로 안채와는 달리 일본식 장마루로 구성됐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창천동에서 온 박서현(26) 씨는 "사랑채의 문을 열면 정원과 곧바로 이어지게 해 놓은게 특히 인상깊었다"며 "이렇게 좋은 곳에서 한상룡이 조선총독부 고위 인사들과 파티를 즐겼다는 사실이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하다"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친일파와 독립운동가가 거쳐 간 집

백인제가옥 별당채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현정 기자
▲ 백인제가옥 별당채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현정 기자

사랑채 앞 정원 한 켠에 있는 샛길로 들어가자 가옥 내 비밀의 공간으로 불리는 별당채가 보였다. 별당채는 다른 건물들보다 반 층 더 높게 세워져 있었다.

수원 영통구에서 온 서영미(61) 씨는 "별당채를 왜 이렇게 외진 곳에 만들어놨나 궁금해하며 올라왔는데 창밖 풍경을 보니 단번에 이해가 갔다"며 "북촌이 한눈에 들어와 정말 아름답다"며 활짝 웃었다. 서 씨는 "조용하고 아늑해 휴식 장소로 정말 안성맞춤이었을 것 같다"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해설사는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키며 별당채 천장을 올려다보라고 말했다. 천장에는 부챗살처럼 생긴 나무 기둥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해설사는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은 목수가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들기 때문에 건축비가 많이 든다"며 "집주인의 재력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소다"고 말했다.

백인제 가옥의 초대 주인 한상룡은 을사오적 이완용의 조카이다. 일제강점기 은행가였던 그는 조선 재계 일인자로 1906년부터 가회동 일대 민가를 구입, 1913년 대저택을 완공했다.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한상룡의 손을 떠난 가옥은 1935년 개성 출신의 언론인 최선익에게 넘어갔다.

집은 그 후로부터 9년 뒤인 1944년, 3·1운동 주도자이자 당대 최고 외과 의사였던 백인제 박사(백병원 설립자)의 소유가 됐다. 6·25 전쟁 중 백인제 박사가 납북된 뒤에는 그의 부인 최경진 씨가 가옥을 지켰다. 서울시는 2009년 최 씨로부터 가옥을 매입해 100년 전의 모습을 복원,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지난달 24일 백인제가옥을 방문한 시민이 사랑채와 안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현정 기자
▲ 지난달 24일 백인제가옥을 방문한 시민이 사랑채와 안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현정 기자

인천 부평구에서 온 송민혜(62) 씨는 안채에 놓인 'VICTOR' 축음기를 보며 "와 이거 정말 옛날에 우리 집에 있던 건데···"라며 반가워했다. 송 씨는 "그 시대 때 이 정도를 유지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집이 으리으리하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역사박물관 관계자는 "백인제 가옥은 현재 80% 복원된 상태이다"며 "차근차근 고증을 거쳐 보완해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부 사진이 남아있는 게 없어 그 당시 상류층이 사용했을 법한 물건들로 공간을 꾸며놓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사전 예약을 하지 않고 백인제가옥을 찾은 손광은(28) 씨는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내부를 관람할 수 없어 아쉬웠다"며 "현장신청도 받아 건물 내부 투어를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역사박물관 관계자는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부득이하게 인원 제한을 해 관람하도록 하고 있다"며 "현재 1회 최대 관람 인원이 25명인데, 향후 조금씩 늘려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따르면, 지난해 백인제 가옥을 찾은 방문객은 총 16만3250명으로 하루 평균 500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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