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과 김대중 전 대통령 뒷조사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이현동(62) 전 국세청장이 8일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조의연 부장판사)는 이날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및 국고손실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 전 청장의 선고 공판에서 "범죄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청장은 국세청 차장과 청장을 지낸 2010년 5월∼2012년 3월 국정원과 함께 김 전 대통령의 해외 비자금 의혹을 뒷조사하는 비밀공작 '데이비드슨 사업'에 관여해 대북공작에 써야 할 자금 5억3500만원과 5만 달러를 낭비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2011년 9월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의 지시를 받은 김승연 전 대북공작국장에게서 활동자금 명목으로 현금 1억2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도 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원 전 원장과 공모해 국고를 횡령했다고 인정하려면, 원 전 원장의 정치적 의도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국고에 손실을 입히려 한다는 것을 피고인이 알았다거나 국고손실을 인식할 외부 정황이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정황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이 전 청장에게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비자금 추적을 요청하면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고, 이 같은 협조 요청을 국세청이 거부하기 어려웠을 사정도 고려했다.
이 전 청장이 1억2000만원을 수수한 혐의 역시 핵심 관련자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승연 전 국정원 대북공작국장, 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 등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박윤준 전 차장이 있는 자리에서 김승연 전 국장이 1억2000만달러를 전달했다고 하는 '삼자대면'에 대해 김승연 전 국장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김 전 국장이 국세청을 방문했을 가능성이 있는 때는 9월 25일 오후 12시 49분부터 90분간인데, 이날 동선은 짧은 시간 동안 양재동∼수송동을 오가며 비자금 추적사업을 설명하고 자금을 건네준 뒤 국정원에 복귀하기에는 빠듯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박윤준 전 차장도 수시로 말을 바꾸고 삼자대면 전후 사정은 전혀 기억하지 못해, 김승연 전 국장의 주장으로 기억이 왜곡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데이비드슨 사업 자체를 지시하지 않았다는 원 전 원장의 진술은 그 자체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전 청장 측 변호인 최의호 변호사는 선고 직후 "삼인성호(三人成虎)로 시작된 재판이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끝났다"며 "진실을 밝혀주신 재판부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사건에 관한 자료를 검찰이 아닌 변호인 측이 조사해 무죄를 입증한 점이 힘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