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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죽지 않는 '실패의 유령'

홍경한 미술평론가



비엔날레를 비롯해 국공립 미술관 기획전 등, 동시대 치러지는 대규모 미술 전시들은 채집된 역사를 포함해 의미 있는 자료와 오브제들을 하나의 공간 속에 뒤섞어 놓는다. 여기엔 예술작품이라 정의되지 않았지만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된 것과 현실을 텃밭으로 한 제의된 각종 사물 및 제안된 상상까지 포함된다.

전문 전시기획자라면 작품을 비교, 탈주, 복원, 충돌로 언급하고, 어긋남과 마주하기 등을 통해 비선형적으로 제시한다. 학제 간 장르 간 경계 넘기로 미학적 간극을 보여주며, 다층적 언어와 불특정 조건의 개입을 허락해 하나의 문맥을 만든다. 그리고 이 문맥은 새로운 미적 태도와 형식을 낳는다.

이와 같은 상황을 전설적인 큐레이터인 '하랄트 제만'의 개념으로 해석하자면 '조직화된 혼돈'이다. 즉, 서로 다른 맥락에서 발생된 잡종의 과정들이 즉시각적으로 생성되거나 소멸되고, 전시라는 틀 안에서 예술과 비예술, 실체와 비실체가 얽히고설켜 자유로운 미적 시도를 일으키는 상태라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짜서 이루거나 얽어서 만들어진 것, 그리고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개체나 요소를 모아 구축한 체계는 과거의 전시방식과 차별을 유도한다. 가치 있는 미술의 방향을 제시하며, 그 방향 위에서 이전과 다른 예술생태계는 정립된다. 우리가 간과하던 논쟁, 논의의 대상이 비로소 의식의 일부로 표면화되기도 한다.

물론 전시를 통한 통상의 생경한 전개와 파격적인 작품으로 인한 논란이 간혹 대두되기도 하지만, 그 논란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예술형식과 방법론에서의 미래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성이 크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 굵직한 그 어떤 전시에서도 예술형식과 방법론에서의 미래성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개념자체는 이해하는 반면, 반드시 구조가 개념을 뒷받침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전시구조는 낙후되어 있다. 전시가 시각적 감흥에 멈추는 가장 큰 배경이자 사실상 불사의 유령을 소환하는 이유다. 이런 현상은 특히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예산을 받아 치르는 행사에서 유독 심하다. 주변의 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기획자들을 힘들게 한다.

전시기획자들은 하나의 전시에 침투하는 기관, 지역, 대중, 미술계 내부라는 다양한 시선과 맞닥뜨린다. 돈을 대는 관의 입장을 헤아려야 하고(그 중에서도 관객 수), 행사가 치러지는 지역의 눈치(지역작가 소외론)도 봐야 한다. 변별력 있는 주제와 그에 맞는 작가를 참여시켜야 하면서도, 미술계 내의 반응(담론형성 여부)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당대 전시들이 철학 없이 부표처럼 흔들리는 원인에는 이처럼 전시를 전시처럼 만들지 못하게 하는 다양한 끼어들기와 명분 희박한 관여가 놓여 있다. 소위 지역일수록 그 참견의 농도는 진하다. 그야말로 아마추어들이 프로의 세계를 좌지우지 한다.

여기에 과대 포장된 기획자들의 실력과 일부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태도도 개념이 단지 논리적 분별에 그치는 원인이다. 이들에게 전시는 입신의 도구요, 기획은 출세의 설계다. 그러니 신념 따윈 기대하기 어렵다. 이밖에도 서구 시선에서의 오만한 세계주의가 무비판적으로 수용됨에도 자각 없는 환경, 시도를 금기시하는 행정 역시 전시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배경이다.

문제는 미술의 순수성은 그저 욕망의 알리바이이기에 기대도 되지 않는 이러한 상황이 당장 변화하진 않을 것이란 점이다. 믿기지 않는다면 현재, 아니 다가올 전시들을 기념비적인 것들과 대조해보라. 깊이 보면 드러나고 가까이하면 읽힌다.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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