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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종합

[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중생무변서원도

중생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도 빼지 않고 구원하겠다는 서원을 가진 뜻이 바로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이다. 모든 중생들의 어려움과 고난 장애를 늘 보고 들으시며 모든 어려움에서 구해주신다는 관음신앙이 함축된 사홍서원(四弘誓願)중 첫 번째 큰 발원이다. 때때로 이런 의문을 가져 보았다. 무궁한 신력을 가진 불보살님이라면 모를까, 자기 자신의 어려움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일개 중생으로서는 어찌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단 말인가? 또 한 기도문을 간절히 염송할 때야 그런 마음이 잠시 일어나더라도 기도를 마치고 산문 밖을 나서면 다시 속세살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방금 절문을 나온 사실도 잊어버리고서는 오욕감정에 휘둘리는데 어찌 만 중생에 자비심을 낼 수 있단 말인가? 필자도 이런 생각으로 자책감에 빠졌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중생이 한량없이 많지 마는 이는 바로 내 앞에 마주친 사람들이나 동물, 대상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중생무변서원도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내가 길을 걸을 때 누군가 내 앞에서 넘어진 사람이 있다면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요, 누군가 당장 나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가족이 되었거나 친척이 되었거나 동료가 되었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중생무변서원도의 실천이란 것을. 어느 이른 아침 일어나 예의 아침 기도를 드리다가 절을 올리고 일어나려는 순간 필자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짧은 통찰이었다. 그래, 누군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대상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성의를 다하는 것, 그것이 바로 모든 중생에게 다 잘하는 일이란 것을 말이다. 의무로서 선행을 하는 것은 의무의 실천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행한 선업이 나만의 선업이 아니라 이 선업의 공덕이 있다면 모든 이들이 그 공덕을 다 함께 고르게 나누어 갖기를 바라며 마음속으로 회향을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좋은 행동이 만인에게 돌려지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중생무변서원도가 될 수 있는 메카니즘인 것이다. 당연 예수님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신 말씀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누가 네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다른 쪽 뺨도 내어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지 않았는가? 그렇다. 살아가다 보면 어려움과 번뇌가 끝이 없지만 내 앞에 다가왔거나 마주친 인연들에 자신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렇게 자애의 마음을 담아 모든 존재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발원해본다./김상회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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