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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새벽을 여는 사람들] "소중한 내 마음, 커피 마시며 운동하세요" 심리상담카페 '제다움' 인수형 소장

인수형 제다움 심리상담카페 소장이 24일 오후 카페에서 드립커피를 만들고 있다. 인 소장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처럼 뭔가 큰 문제에 이르러 단절된 공간에서 상담하고 현실로 돌아오는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며 "우리가 운동할 때 옆에서 트레이너가 도우면 운동을 더 잘하게 되는데, 마음 운동 역시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손진영 기자 son@



새벽 5시. 불개미 수만 마리가 인수형(47)씨의 다리를 물어뜯으며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뼛속까지 붙어 사는 "뜨겁고 차갑고 시리고 가렵고 저린" 통증은 먹이를 문 개미처럼 물러날 기색이 없다. "아침에 세 알, 점심엔 필요할 때만 두 알, 저녁에 세 알…." 잠시나마 놈들의 입을 닫으려면 꾸준히 약을 삼켜야 한다. 명상과 요가로 밤새 굳어진 근육을 풀고는 수영장으로 향한다. 두 손 안에 쏙 들어가는 허벅지 근육을 사정없이 흔들어 깨운 뒤에는 서울 성동구의 '제(Je)다움 심리상담카페'에서 손님을 맞는다. 전직 SBS 뉴스 PD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이 만든 일과다.

◆'3층 추락'이 가져온 좌절과 기적

지난달 24일 제다움에서 만난 인수형 소장은 드립커피를 마시며 화마에 삼켜진 커피콩의 고통을 되돌아보았다. "1993년 방송국 입사 이후 뉴스 PD만 해오다가, 2003년 조용필 콘서트 DVD 제작에 참여하면서 '이런 세상이 있구나. 괜찮네' 싶더라고요. 영상미의 확장성을 동경했지요. 2005년 명예퇴직 이후 각종 콘서트 스태프로 경험을 쌓고, 2010년에는 친정 회사(SBS)의 외주제작사를 차렸어요. 지난해에는 경기대 영상예술학 박사 학위도 받았고요."

끝없이 헤엄쳐야 숨을 쉬는 참치와도 같이, 그에게 영상은 드넓은 바다였다. 멈출 줄 모르던 그의 질주는 2012년 2월 어느 날, 차디찬 운명의 그물에 걸리고 말았다.

"어느 업체의 홍보 영상 촬영장이었어요. 원하는 그림이 안 나와서 난간에 있는 카메라 감독을 지도하다가 균형을 잃고 떨어졌죠."

3층 높이에서 추락한 그의 척추 12개가 부러지고 골반 4군데에 금이 갔다. 두개골이 갈라진 여파로 오른쪽 귀로는 소리를 못 듣게 됐다. 이대로 주저앉나 싶었지만, 반년만에 기적이 찾아왔다. "신경이 돌아오는 과정에서 열이 40도까지 올라갔어요. 무릎을 치면 반응 없던 다리가 올라오기 시작했죠. 휠체어냐 운동화냐, 아찔한 갈림길에 서 있던 겁니다."

하지만 그는 이 사고로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 환자들과 같은 고통을 평생 안고 가야 한다. CRPS는 원인을 알 수 없지만, 그가 겪는 사고 후유증은 아픔의 정도가 같다고 한다.

다시 일어서는 과정도 험난했다. 중추신경이 돌아오자, 인 소장의 다리는 걸음마를 배우기 전 아기의 상태가 되었다. 중력의 힘을 견디며 기어다니다 기계에 의존해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물 속에서 꾸준히 걸었다. 2013년 퇴원 당시 짚었던 두 개의 지팡이는 일 년 만에 내려놓았다. "보통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걷지만, 저는 왼쪽 발의 뒤꿈치가 닿는 순서도 일일이 계산해가며 걸어야 해요. 그래서 제가 걷는 모습은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죠."

인수형 제다움 소장이 준비한 커피를 손님에게 내어주고 있다. 인 소장은 "예전부터 만들기를 즐겨온 커피와 차, 방과후아동지도사 자격증, 우쿠렐레지도사 1급 자격증 등이 카페 준비와 운영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경기대에서 영상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심리상담에 도움이 되는 영상을 틀기 위해 지하 1층 천장에 프로젝터를 설치했다./손진영 기자



◆나를 돌아보다 심리상담 결심

극한의 고통은 인 소장이 타인의 마음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2013년 퇴원 이후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린 그는 일 년을 집에서만 보냈다. "동생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 하더군요. '형이 그렇게 괴로워한다고 해서 낫지 않는다. 만일 그렇게 해서 낫는다면 계속 그렇게 해라. 하지만 일어나야 한다'며 커튼을 걷으니 빛이 방에 들어찼어요."

의사와의 상담을 시작한 인 소장은 고통의 실체를 파헤치려 심리학도 공부했다. 마음 치유를 위한 우쿨렐레 연습도 시작했다. 평소 즐기던 커피와 차, 자신처럼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인 공간을 열망했다. 카페에서 활용하기 위한 심리상담사 자격증은 2016년 취득했다. 인 소장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사람들이 자주 찾는 '마음 운동장'을 짓는다는 목표로 지난 1월 1일 성수동 골목에 제다움 카페의 문을 열었다. 제(Je)는 '나'를 낮추는 말이면서 프랑스어로도 자신을 뜻한다.

혼자서 8평짜리 1층 내부를 친환경 소재로 꾸민 인 소장은 비슷한 규모의 지하 1층 작업도 이어가고 있다. 또 다른 직업인 PD 업무로도 바쁜 나날을 보낸다.

"한 시간에 10만원 받는 심리상담센터와는 다르게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차 한 잔 값으로 간단한 상담을 해 보는 거예요. 아파트 문화가 뿌리깊은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는 마당 정서가 강해서, 사람들이 카페에서 툭 터놓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거든요."

그가 말하는 '마음 운동'은 일상적인 훈련이다. "우리의 몸을 계속 단련 시키면, 사고를 당했을 때 덜 다칠 수 있어요.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이 있어야만 찾는 단절되고 조용한 공간이 아니라, 자주 들러 얘기하고 자존감을 찾아갈 카페가 필요합니다. 피트니스센터에서 트레이너의 개인 지도를 받는 것처럼, 마음 역시 평소에 그렇게 운동해야 돼요." 가끔 찻잔을 들고 인 소장과 담소를 나누는 손님은 20여명이다.

본격적인 상담 프로그램은 총 3단계로, 단계마다 10회에 걸친 상담이 진행된다. 현재 1단계를 등록한 9명 대부분이 5회차 이상을 마쳤다. "우선 자신이 감상한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싶고,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해요. 그럼 그 사람 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게 돼요.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자체만 건드리면 안 좋으니까 영화를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죠. 그 일이 일어난 이유를 살펴보며 2단계에 접어들어요. 사람들은 대개 어린시절의 아픔 때문에 지금 문제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걸 끊어줘야 해요. 만일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했다면, 당시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특정 상황이 왔을 때 순식간에 과거의 기억이 덥쳐와 괴롭습니다. 그걸 끊으려면 꾸준히 상담 해야 돼요. 내 안에 이것이 있다고 인정하되, 앞으로 끄집어내지 않는 방향으로 상담합니다."

마지막 단계에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계획중인 1박 2일 템플스테이와 레크리에이션이 포함된다. 템플스테이의 경우,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를 종이에 적고 불에 태우는 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인수형 소장은 "부모들이 상담하러 와서 '아이가 문제'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해준다"며 "부모도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 역할을 하며 실수를 거듭한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라는 관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손진영 기자



◆"마음이 건강한 공동체 늘리고파"

제다움 카페는 그가 구상하는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다. "동네 가게나 작가들과 제휴해서 상담자들에게 우쿨렐레 연주와 미술, 액세서리 공예 수업료를 한 달 간 절반으로 깎아줘요. 빵집과 목공예 등 다른 제휴도 추진 중이죠."

이렇게 사람들이 마음을 치유하며 취미에 몰두하다 보면, 그 일이 직업이 될 수도 있다. 이후에는 본인도 다른 사람들에게 해당 기술을 가르치는 선순환이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올해 인 소장의 목표는 5개점 확보다. 지금은 강남에 들어설 2호점 준비가 한창이다. 점주는 자기 분야를 꾸준히 연구하고 학생 면담도 많이 해 온 대학 교수들이 대상이다. 2호점주 역시 교수라고 한다.

고통을 달고 살면서도 쉴새없이 움직이는 이유를 묻자 "우리는 누구나 죽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제가 죽었을 때 어떤 사람으로 남게 될까 생각하니, 이 삶을 게을리 보낼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 어차피 지나가는 시공간 속에서 평생 먹어야 할 약들이 단지 '밥'으로 남게 되었죠(웃음)."

한끼 식사처럼 고통을 삼키며 따뜻한 마음의 밥을 짓는 인수형 소장은 무료로 상담받을 청소년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주에 고등학생 셋이 가게 옆에서 담배를 피우기에 '스트레스 때문이라면 나에게 오라'고 했어요. 카페에 청소년 무료 상담 플래카드를 붙이려고 해요. 그 아이들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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