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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금융정책

"123만명 채무탕감, 원칙있는 상각 시스템 구축해야"



취약계층의 신용회복을 위한 채무탕감 추진 정책의 가장 큰 걸림돌은 '도덕적해이(모럴헤저드)'에 대한 논란이다.

빚으로 죽음까지 내몰린 서민들의 속사정이 전해지며 채무탕감의 필요성에 대해선 충분히 인식하지만 도덕적해이에 대한 반감은 채무탕감 정책의 추진동력을 매번 약화시켰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신용회복 지원을 위한 채무탕감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도 채무자의 도덕적해이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하지만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의 도덕덕해이와 가계가 빚을 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구조를 개선하지 못한 국가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도덕적해이'굴레에 갇힌 채무탕감

도덕적해이를 경계하는 이들이 말하는 것 처럼 채무탕감은 의도적 채무불이행을 조장할까.

전문가들은 충분히 가능한 문제제기지만 채무탕감 선정대상과 방법 등 정책이행 과정에 달려있다고 진단한다.

유종일 주빌리은행장·KDI 정책대학원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채무탕감 기준으로 1000만원 미만, 10년 이상이라는 기준을 설정한 것도 도덕적해이를 막기 위한 방안"이라며 "이들 중 많은 경우는 원금 이상의 금액을 이미 갚았지만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장기연체자가 되고 고강도 추심과 사회적 배제의 고통을 장기간 감내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고통을 10년 이상 감당하며 채무 탕감의 수혜자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는 논리다.

정운영 금융과행복네트워크 의장은 "도덕적해이 등 비용이 발생해도 채무탕감이 가져오는 편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미래의 사회 및 경제적 안정이라는 효용을 고려하면 그 비용은 미미한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채무자보다는 돈을 빌려준 채권자의 도덕적해이를 더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 교수는 "채무자에게 변제 의무가 있다면 채권자에게는 신중한 대출의 의무가 있다"며 "채무자의 능력 등을 잘 판단하지 않고 마구잡이 대출과 과도한 추심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원칙있는 상각 시스템 구축해야"

문재인정부는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장기연체자의 빚을 100% 탕감해 주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 3월 기준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소액·장기연체 채권은 4조4848억원이며, 채무자수는 123만3000여명에 달한다. 금융권의 연체 채권까지 더하면 규모는 더 늘어난다.

토론회 자리에 모인 전문가들은 채무탕감 정책을 실시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채무조정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정 의장은 "채무자들의 도덕적해이를 논하기 전에 선순환의 상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채무탕감이나 감면대상 선정기준을 명확히 하고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것과 함께 금융회사가 신용공여(대출)의 책임을 스스로 부담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속성 확보 방안도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포럼 회장은 "제도가 지속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소멸시효가 남아 있는 채권을 누구로부터 양수할 것인지나 재원은 어디서 조달할 것인지도 관건"이라며 "법제화 또는 제도화 시키지 않고서는 제도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군희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채무탕감 이전에 채권추심 행위에 대한 남용과 불법채권추심행위를 인권유린의 중죄로 취급해 강력하게 처벌함으로써 채무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이와 함께 채무탕감을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경쟁적으로 펼치는 선심성 정책으로 남용하지 말고 합리적인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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