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과 액세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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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과 액세서리

최종수정 : 2017-05-14 11:53:12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얼마 전 모 미술관에 근무하는 한 지인은 “미술관이 돈 있는 사람들의 놀이터 같다”며 머잖아 그만 두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작품 소장, 교육, 연구라는 미술관의 기본적인 역할에 충실하지도 않을뿐더러, 예술자체를 품위 있는 척 포장하는 ‘액세서리’ 정도로 여긴다는 의미였다.

그의 푸념은 안타까움을 불러왔지만 그렇다고 버텨보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예술과 예술 공간을 처세와 고상함을 꾸미는 사적 도구로 여기는 곳에 오래 있어봤자 남는 건 피폐해진 정신일 것이라 오히려 그만두라고 조언했다. 그것도 하루라도 빨리.

경제적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한 예술가들에게 수준 높은 미적 태도와 인문학적 지식을 겸비한 자본주들의 관심은 때로 마른 땅을 적시는 단비와 같다. 특히 요즘처럼 예술가로서의 삶이 위태로운 시대에서 남다른 예술 안목을 지닌 부호들의 지원과 애정은 창작의 지속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모든 후원과 지원이 공익적이거나 순수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에도 거죽의 명분과 내용은 각기 다르게 존재하며,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부유하거나 동기에 따른 차이가 이입되어 있다.

이는 메세나(mecenat)의 기원으로 꼽는 로마시대는 물론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메디치 가문을 위시한 이사벨라 데스데,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와 같은 여러 역사적 인물들이 예술지지자로 나섰던 르네상스시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잊힌 고대세계의 문화(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찾으려 했던 14세기 이후의 르네상스가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있었던 배경엔 당시 권력 핵심이었던 교회와 도시국가를 지배하던 영주들, 그리고 경제력을 갖춘 일부 가문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당시 권력자들은 단테를 비롯한 인문주의자들에 의한 인문 열풍에 힘입어 고대의 예술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예술창작을 적극 후원하고 나섰다. 때문에 고작 200여년 남짓한 시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문화예술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후원의 배경엔 개인의 영웅화와 가치실현의 인위성도 들어 있었다. 역사에 흔적을 남기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예술 후원과 권세를 널리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예술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가문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고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미술의 시각적 권위(기념물이나 초상화, 역사화 등)를 이용했다. 도시공국의 유력 가문들은 다른 도시국가와의 원만한 외교를 위해 예술가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취약한 정통성을 확보하고 권위를 획득하려는 목적에 따라 예술 사랑을 내세운 예도 있다. 외교무역과 금융업으로 부를 축적한 거상(巨商)들이 고대의 조각품을 소유하는 것으로 자신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기에 바빴던 사례가 그 하나이다.

흥미로운 건 그때나 지금이나 예술을 고상함과 품격을 유지하는 '장식' 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드물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 기업들은 천한 장사치의 이미지를 감추기 위해 찬란한 예술의 후광을 ‘하얀 가면’처럼 여기며, 허세 차원에서 혹은 그 세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 공간을 짓고 그림을 구입한다. 누군가는 지식과 역사, 인류사의 전당인 미술관의 가치를 등진 채 탈세의 목적으로, 부의 조건 없는 이전 창구로 공간과 미술품을 악용한다.

물론 보편적이지 않아 그렇지, 문화향유 확대라는 공공적 관점으로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예술품을 수집하는 이들도 있다. 예술 지원은 기념비적인 예술의 탄생을 예고케 하며 문화예술의 틀과 미래마저 바꿀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한 이들도 드물지는 않다.

허나 아직도 우리 사회엔 지역 유지로 행사하기 위한 도구로 미술관을 운영하는 이들이 있고, 미술관 운영에는 별 관심이 없으면서 관장이라는 직함에 따른 사회적 평가에 고무되어 미술관을 유지하는 듯한 느낌을 심어주는 곳도 없는 건 아니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그들에게서 체감되는 사실은 예술을 천박하고 세속화된 욕망의 수단으로 삼거나 창작환경의 열악성을 자신의 불편한 예술취향에 대한 호불호로 허용하고 있다는 것을 남들은 다 알고 있음에도 정작 자신만 모른다는 점이다. 내부에서 보면 되레 그들 자체가 문화 인식적 액세서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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