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시시일각] 국립현대미술관 마리 관장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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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국립현대미술관 마리 관장의 변명

최종수정 : 2017-04-16 14:42:52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지난해 말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미국의 팝아트 작가인 '앤디워홀'과 영국의 '리처드 해밀턴', '피카소' 등의 서양 거장들의 전시를 2017~2018년 순차적으로 선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마리 프로젝트'라 이름 붙인 이 전시들은 발표한지 불과 두어 달도 채 되지 않아 줄줄이 엎어져 전시파행 논란을 일으켰다.

2월 열릴 예정이던 '앤디 워홀의 그림자들'전은 개막 코앞에 이르러 진행이 중단됐고, 2018년 선보일 계획이었던 '피카소와 전통예술'전도 취소됐다. 여기에 4월 개막을 예고한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전 역시 개막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미뤄졌다.

파행이 잇따르자 마리 관장에 대한 미술계 여론은 취임 초기보다도 훨씬 나빠졌다. 언론의 질타가 이어졌고 일부 미술인은 국격을 손상시켰다며 마리 관장에게 손해배상까지 청구해야한다는 격앙된 반응까지 보였다. 그러자 마리 관장은 최근 적극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일부 매체에까지 소개된 내용은 말이 해명이지 사실상 변명과 다름없었다.

일례로 마리 관장은 '앤디 워홀의 그림자들'이 무산된 이유로 미래 사업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어려운 운영시스템과 예산 과다를 들었다. 즉, 통상 1년 단위로 전시 계획을 잡아야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구조상 미리 전시기획을 짜놓을 수 없고, 그래서 중국에서 열리고 있던 전시를 가져오기로 했지만 막상 개인전에 8억 원의 예산을 사용하려니 부담스러워 전시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2018년 개최하겠다고 공언한 '피카소와 전통예술' 전시가 물 건너간 것도 돈 문제로 넘겼다. 2017년 기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예산이 총 88억 원인데, 적게는 20억 원에서 많게는 30억 원이 투입되는 피카소 전이 미술관 운영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취소했다는 것이 요지다. 전시가 미뤄진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에 대해선 반출 승인과 포장 지연이 원인이라고 밝혔다.

전시가 무산된 이유에 관한 해명 혹은 설명의 글에서 받은 인상은 굴비 엮듯 취소 및 연기되며 관장 자질 논란까지 몰고 온 전시파행이 자신 탓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전시가 약속대로 열리지 못한 원인으로 운영시스템과 예산문제를 꼽았을 뿐 미술관 수장으로서의 책임의식 부분에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았다.

프로답지 못한 전시기획에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예산이 미술관에 부담이 되는지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시를 추진하다 뒤늦게 포기를 선언하는 행태나, 작품 선정 및 통관 일정 등의 기본적인 사항마저 협의되지 않은 채 말부터 앞선 경솔함 등은 그의 해명 어디에도 녹아 있지 않다.

그는 "외부에서 재원지원을 받아 부족한 예산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전시를 진행했다)"는 어이없는 발언도 해명에 덧붙였다. 이 말은 재정의 취약함을 알면서도 전시를 추진했다가 막상 마음처럼 되지 않자 전시를 덮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는 달리말해 상황이 불충분하면 언제 어떤 전시든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민과의 약속을 이처럼 쉽게 뒤집는 양태는 전문 기획자로서의 자세라고 판단하기 힘들다.

어쨌든 현 시점에서 마리 관장 스스로 호언했던 전시들은 무엇 하나 제대로 지켜진 게 없다. 이미 상업기획사들이 숱하게 우려먹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템, 적어도 동시대미술의 최전선을 비춰야 할 국립현대미술관이 다루기엔 적절하지 않은 작가들의 전시조차 채 무위에 그쳤다. 그에 비례해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신뢰도 추락했다.

그렇지만 전시 파행이 마리 관장만의 책임은 아니다. 실무진들도 비판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두 번도 아니고 관장의 이름을 내건 전시들이 연거푸 실없이 처리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관장의 역량을 보완해줄 이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탓이다. 관장이 뭘 잘 몰라 실수라도 할라치면 주변에서 보태거나 빼줘야 하는데 그런 일련의 프로세스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즘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말할 때마다 소통부재가 언급되고 학예실장과 팀장들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쓴 소리가 심심찮게 나온다. 새롭지도 않은 전시를 기획해 놓고 성사도 못시키는 일개 화랑만도 못한 현재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이러다 능력 없는 자들이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공공기관에 눌러앉아 폼만 잡는다는 얘기라도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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