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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미소가 봄을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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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시골 친구는 명랑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서울의 모든 아가씨들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환상에 푹 빠져 있었다. 지나가는 아가씨에게 길을 물으면 살갑도록 요모조모 안내해준다는 것인데, 하나같이 미소로 추파를 던진다는 거다. 자신에게 무슨 흑심을 품는 것 같다나. 물론 사람 나름이겠지만 그는 그럴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작달막한 키에, 배가 튀어나온 체형부터가 아이돌 스타일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양말 한 켤레를 사나흘 신는 집념을 보이는 괴짜였다.

새싹이 파릇파릇 춘 삼월로 향해 발돋움하던 딱 이 무렵, 그의 자유로운 환상도 봄 햇살을 받고 날개를 한껏 펼치고 있었다. 고교시절 백면서생처럼 공부밖에 몰랐던 그는 서울 땅을 밟은 이후 이성에 반짝 눈을 떴다. 어쩌면 오랜 전부터 갈망했을 풋사랑에 허기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환상이 날개를 접은 건 생애 첫 미팅을 하고 난 직후였다. 생끗 미소를 짓던 파트너에게 '내가 그렇게 좋냐'며 겁 없이 영웅본색을 들이댔다가 된통 퇴짜를 맞았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춘 삼월의 환상은 깨졌고, 상처는 깊었다. 자존심이 유난했던 그는 한동안 소식을 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는 여자에 관한한 숙맥이었다. 그런 그 앞에 청춘을 스케치할 백지의 새 도화지가 툭 던져졌으니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굳이 민태원의 중수필 '청춘예찬'의 첫 대목을 빌릴 것도 없이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었을 것이다. 뭘 그릴까? 신세계를 만난 그는 색연필을 만지작거리는 어린아이 마냥 달떠 있었다.

환상에 젖을 만도 했다. 돋보기로 전후사정을 들여다보면 그가 착각에 빠질 만도 했다. 파트너의 '상냥한 말씨'는 무뚝뚝하고 투박한 사투리에 농익은 촌놈의 귀에는 '호감의 언어'로 번역돼 입력됐다. 파트너가 띄운 야릇한 미소는 '난 사랑에 빠졌어요'로 해석했다. 청춘 도화지에 이런 오류를 색칠했던 거다. 촌티 나는 패션에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의 그를 보면 웃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파트너의 입장에선 코믹한 당신을 보면 '그저 웃지요'에 불과했다.

그 웃음을 내면으로 삭이면 미소가 된다. 한 길 속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미소의 속성이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의 미소를 보라. 보는 사람에 따라, 마음에 따라, 시각에 따라, 시대에 따라 해석이 천차만별이지 않은가. 신비스런 미소로 읽는가 하면 더러는 슬픔을 머금은 미소로 본다. 그 미소에 담긴 의미는 510여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미스터리로 풀리지 않고 있다. 친구는 그 날 미팅 파트너의 야릇한 미소가 수수께끼로 느껴졌을 것이다.

보면 볼수록 애매모호하게 다가오는 모나리자의 미소. 그것은 한 점의 미소에는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이 함축돼 있다는 방증이다. 미소 한 번 벙긋거리는데 50여개의 얼굴 근육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니 그럴 것이다. 순백의 미소는 그러나 그 어떤 의미를 담든 거기엔 마음을 흔들어 놓는 감동의 마력이 불꽃 튄다. 호감을 갖게 하고, 가슴을 설레게 하고, 사랑에 젖게 하고, 때로는 세파에 지친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주는 그런 미소의 힘 말이다.

봄의 길목에서 서성거리는 삼월! 너울거리던 미소가 꽃 내음이 짙은 봄을 만나려 한다. 여기저기 돋아나는 새순이며, 살랑대는 봄바람이며, 찬란하게 부서지는 고운 햇살이며, 파란 하늘이며, 거기에 피어난 하얀 뭉게구름이며, 숲에서 지저귀는 산새들이며, 그렇게 약동하는 봄 향연의 도화지에 미소의 꽃을 그려 넣고 화사하게 색칠하고 싶은 계절이다. 순백의 미소가 꽃피는 봄 풍경을 마음의 화폭에 담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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