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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눈물 젖은 자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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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한 폭의 삽화가 추억의 날개를 펼치려하는 걸 보니 설날이 다가왔나 보다. 어떤 그리움이 성큼 달려와 노크하는 육감이랄까. 설맞이 할 즈음이면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세월은 흘려갔어도 여전히 가슴에 남아 심쿵거리는 게 있다. 복조리 아르바이트! 복조리는 1980년대 초 대학생 아르바이트 히트 상품이었다. 디지털시대에 이 색 바랜 추억이 외려 곧추 세워지는 건 동네방네 메아리치던 복조리 장수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아쉬움 때문일 게다.

요즘처럼 시급 아르바이트를 한 건 아니었다. 짚으로 엮은 그 까칠한 조리를 도매상에서 직접 떼와 구색 갖춘 완제품으로 만들어 거리에 나선 아르바이트. 떼 온 조리 물량은 자그마치 2000여개. 언덕 같은 수량이었다. 우리는 동네 가게에서 빌린 손수레가 비척거릴 정도로 실어 날라야 했다. 누가 보면 무슨 큰 사업하느냐고 했을 거다. 무슨 돈으로 그 많은 조리를? 우린 땡전 한 푼 없었다. 그렇다고 부모가 한 밑천 대준 것도 아니었다.

그 많은 조리가 손수레에 실리기까지 곡절은 기막히다. 무일푼 선물거래! 이 제안에 도매상 주인아저씨는 아서라 손사래를 쳤다. 급기야 아저씨는 팔짱을 꼈고, 말똥거리는 학생들의 눈을 한참이나 바라봐야 했다. 이 당돌한 계약이 성사됐을 땐 물건 값을 꼭 갚겠다는 우리의 간곡하고도 애절한 모습이 이슬 맺힌 주인의 동공에 맺혀 있었다. 학생증이 유일한 보증서였고, 저당권이었다. 세상물정 모르던 대학생 셋이 벌인 설날 이벤트는 그렇게 이뤄졌다.

복조리는 낱개의 조리를 한 쌍으로 묶어야 완제품. 섣달 그믐날 한 명은 조리 두 개를 철사로 묶었고, 또 한 명은 붓 펜으로 복(福)자를 써넣은 노란 리본을 달았다. 나머지 한 명은 상품에 하자가 있는지 검품을 했다. 그렇게 만든 복조리가 1000여쌍. 세 대의 손수레는 얼음바람을 씽씽 가르며 동네를 누볐다. 손수레가 바닥을 드러내기까지 꼬박 이틀 걸렸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걸 어떻게 다 팔았을까 싶다. 남은 복조리는 허름한 집에 무료로 넣었다.

설날 복조리 아르바이트는 '친구 구하기' 이벤트였다. 급작스럽게 형편이 어려워진 친구의 학비 조달을 위해서였다. 아르바이트를 결산하던 날 자장면을 먹으면서 눈물을 훔치던 그 친구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모두가 손발은 얼어붙어 있었고, 눈물은 눈물을 낳았다. 혹여 친구가 눈치 챌세라 밑으로 억눌렸던 눈물은 가슴을 적시더니 끝내 눈가로 밀려왔다. 너도나도 울었다. 눈물 젖은 자장면을 먹으면서.

요즘 자장면을 먹다가도 그 친구 비슷한 사람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왜 하필이면 맛나는 자장면이냐 말이다. 그 친구는 지금 정형의과 의사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다. 습관처럼 됐다. 지금도 셋 친구가 모이면 추억의 복조리만으로도 이야기꽃이 한껏 만발한다. 1000여 집 가까이 돌았으니 1000여 송이의 꽃이 핀다. 그 집집마다 각각의 표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 허물어져가는 집에도 행복하게 미소 짓는 걸 봤다.

복조리 아르바이트가 소중한 교훈을 가르쳐줬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건 어른이 된 후였다. 내 마음 속에 걸어둘 복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행복은 그 복조리에 무엇을 담느냐에 달렸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일찍이 옛 선인들은 복이란 선한 일을 했을 때 찾아오는 경사라고도 했다. 복조리를 벽에 건다고 해서 복이 오는 건 아니다. 이 겨울 마음의 대문에 '희망'을 담은 복조리를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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