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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창작레지던시'의 그늘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레지던시란 일정 기간 동안 작가에게 작업공간을 지원하는 현재진행형 예술창작지원 프로그램을 가리킨다. 즉, 창작 진흥을 목적으로 예술가에게 작업실과 시설을 제공하는 것이 레지던시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 후반 처음 등장한 이후 2016년 현재 공사립 포함 130여개의 레지던시 혹은 창작공간, 창작스튜디오가 이름만 달리 한 채 존속되고 있다.

그러나 약 20여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음에도 여러 창작 거점공간들은 여전히 본래의 설립취지가 무색할 만큼 지역 내 다중적 이해관계가 얽힌 기초문화시설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는 지역 권력자들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수구공간으로 전락하고 있을 뿐더러, 저급한 시장논리를 접목시키거나 창작스튜디오의 대외적 효과가 강조되는 가시적 이벤트에 작가들을 동원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 중에서도 짧으면 3개월, 길어야 1~2년 머무는 입주 기간은 레지던시 작가들에게 가장 심각한 불만사항으로 꼽힌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넉넉하지 않다는 이유가 크지만 짐을 풀자마자 다시 싸야 하는 처지에서 진득한 예술창작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주 경험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어느 곳이나 하나 쯤 있는 기획인 '지역연계', '시민참여프로그램' 등도 작가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원인이다. 사실 이러한 프로그램의 태동에는 세금이 투입되니 만큼 예술가의 재능을 지역기반조성 및 시민 예술 공유에 써야 한다는 정책자들의 단순한 발상이 녹아 있다. 예술가들의 지역 공헌이 궁극적으로 도시재생 및 문화예술 향유 확대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믿는 정부와 지자체들의 막연한 신념도 하나의 배경이다.

그러나 단기 거주에 머물 수밖에 없는 생태에서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협업하며 조력한다는 건 애초 말이 되질 않는다. 이는 기관 종사자나 작가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순수창작공간을 넘어 '주민문화시설'을 지향하는 정책기조는 무언가 가시적 결과를 강요한다. 그러니 창작공간들이 행하는 지역연계, 시민참여프로그램이란 그저 뭔가 그럴싸한 형식적인 아이템에 불과하기 일쑤다.

'유배지'를 연상케 하는 창작공간의 위치도 문제로 거론된다. 실제로 대부도 인근에 자리 잡은 경기창작센터나 이천의 금호창작스튜디오 등은 끔찍한 위치로 유명하다. 고압 송전탑이 지나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도 그리 좋은 장소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이곳은 서울시립미술관 운영이라는 브랜드에 걸맞지 않게 딱히 차별화된 공간이라는 여운도 주지 못하고 있다. 인지도가 아까운 케이스다.

유휴시설, 폐교활용이 60%에 달하는 공간 활용현황 또한 썩 긍정적이지 않다. 대체로 산업화와 도심화 정책에 밀려 용도 폐기된 기존 공간을 재사용하고 있어 문화근접성이 상당히 불편하다. 이 부분에서 우린 정부와 지자체, 기업들이 대략 어떤 공간들을 그동안 예술가들에게 할애해 왔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밖에도 전문성 부족한 스텝과 관료화, 대동소이한 프로그램, 레지던시가 대안적 권력으로 작동하는 구조 등도 한국 창작스튜디오의 난감한 현주소를 가리킨다. 여기에 간혹 능력 있는 기관 종사자들이 좀 잘해보려 해도 사사건건 간섭하는 '높은 분들'이 적잖아 제대로 된 방향설정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비록 작업실 마련, 네트워크 형성, 전시 기회, 지원금 한 푼 등이 아쉬운 탓에 많은 작가들이 지원하는 레지던시지만, 위와 같은 양태들에 대한 총체적 고민이 없는 한 한국 레지던시들은 고만고만한 차원을 면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레지던시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유효하지 않다면 우리네 창작공간들은 오늘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질 못할 것이다.

※홍경한은 미술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자문위원,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 박수근미술상 운영위원, 서울시립미술관 전시평가위원 등을 지냈다. 미술월간지인 미술세계, 퍼블릭아트, 경향아티클에서 편집장을 맡아왔으며 대림미술관 사외이사로 있다. 대구신문, 메트로신문, 주간경향, YTN 등에 매달 고정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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