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정치의 승리, 시장의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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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정치의 승리, 시장의 패배

최종수정 : 2016-07-06 14:17:34
 데스크칼럼 정치의 승리, 시장의 패배

며칠전 큰 아들이 케이블TV를 인터넷TV(IPTV)로 바꾸자고 했다. 지역 유선방송은 볼 게 별로 없고, 화질도 자주 끊긴다는 것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큰 아들에게 "지금은 아마 비가 와서 방송이 끊기는 것이다. 게다가 동생이 고3인데 TV가 너무 재미 있으면 공부를 안 하지 않겠냐"며 당분간 참자고 했다.

실제로 케이블TV는 재미가 없다. 경쟁력도 없다. 재미있는 콘텐츠는 IPTV에 더 많다. IPTV업체들은 막강한 자금을 앞세워 소위 말하는 '킬러 콘텐츠'를 구매해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수 많은 프로그램을 다 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지역 유선방송들은 지상파 방송의 드라마를 재방송하거나 인기 없는 외국 드라마·영화만 보여준다. 현지에서도 관심을 못 끈 중국 역사드라마도 몇 채널씩 된다.

당연히 케이블TV를 끊는 시청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케이블TV 가입자는 지난 2009년 1500만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380만 정도로 줄었다. 매출도 케이블TV가 첫 방송을 시작한 1995년 이후 계속 늘다가 2014년 처음으로 매출이 꺾였다. 2014년 매출은 전년보다 330억원 가량 줄어든 2조3462억원을 기록했다.

CJ그룹이 CJ헬로비전을 매각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케이블TV의 성장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 CJ그룹은 CJ헬로비전 매각대금으로 콘텐츠 투자를 추진했다. '응답하라 1988'이나 '또 오혜영' 같은, 지상파 드라마와는 색깔이 다른 재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SK텔레콤 입장에서는 전국 78개 권역 가운데 23개 권역에서 사업을 하며 지역 기반이 비교적 탄탄한 CJ헬로비전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와 합치면 미디어 플랫폼 사업에 새로운 활력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침체된 통신사업에 방송을 융합해 새로운 먹을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도 생각했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M&A)을 사실상 불허해 이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문제는 이번 공정위의 판단을 수긍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유료방송 시장의 지역권역별 시장 지배력 강화'를 우려해 M&A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전체 유료방송시장을 보면 KT와 KT스카이라이프가 29.34%를, CJ헬로비전은 14.8%를, SK브로드밴드는 12.05%를 차지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공정위 말대로 두 회사 합병 이후 시장점유율이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케이블TV가 지역기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전국적인 시장지배력이 어떻게 되느냐인데, CJ헬로비전과 SK브로드밴드를 합쳐도 KT보다 적은 26.85%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왜 공정위가 이런 판단을 했을까. 객관적인 지표만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설득력을 얻는다. 실제로 최근 청와대에 입성한 현대원 미래전략수석비서관은 이번 M&A를 반대해온 KT에서 사외이사를 지낸 인물이다. 현 수석은 청와대 입성 전에도 SK텔레콤을 '황소개구리'에 비유하면서 이번 M&A를 적극적으로 반대해왔다. 공정위 입장에서는 이런 청와대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상파방송들도 M&A를 반대했다. 여러 논리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CJ그룹의 콘텐츠 사업이 커지는 것을 무서워했다는 점이다. 자신들은 킬러 콘텐츠에 투자하지 않으면서 남들이 투자하는 것은 못보겠다는 심보다. 식상한 막장 드라마나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연예인들의 수다 떠는 것만 내보내면서 다른 사업자가 재미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방해하겠다는 것이다. 왜 지상파들은 '응답하라 1988'이나 '또 오혜영'처럼 막장이 아니면서도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콘텐츠를 만들지 못하는가. 그런 반성은 하지도 않은 채, 자신들은 변하지 않은 채 다른 경쟁자가 나오는 걸 방해하는 게 쉬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공정위의 이번 M&A 불허는 정책의 승리라기보다 정치의 승리라고 보는 게 맞다.

반면 시장은 패배했다. 미국의 구글이 유튜브란 동영상으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미국의 주문형비디오 업체인 넷플릭스가 국내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겠다고 선포했다. 이에 맞서 국내 통신방송업체들은 선제적이고도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그런데 그 계획이 좌절된 것이다.

이제 케이블TV 산업에 변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케이블TV 시청자들은 앞으로도 재미 없는 드라마 재방송이나 봐야 한다. 통신업체들은 방송과 융합된 신시장을 만들 길이 막혔다. 당분간 통신과 방송산업에 변화는 없을 것이다.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인수하고, 이에 맞서 KT나 LG유플러스가 또 다른 방송사업자와 합치고, 그러면서 서로 치고받고 경쟁하는 게 시청자 입장에서나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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