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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종합

[박소정의 메트로 밖 예술세계로] (27)근대사의 무대에서 사색을 즐기다…시청역 덕수궁 돌담길, 최병훈의 '예술의 길, 사색의 자리'

[박소정의 메트로 밖 예술세계로] (27)근대사의 무대에서 사색을 즐기다…시청역 덕수궁 돌담길, 최병훈의 '예술의 길, 사색의 자리'

시청역 덕수궁 돌담길, 최병훈의 '예술의 길, 사색의 자리'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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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선 시청역 1번 출구를 나와 몇 걸음만 옮기면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한 순간에 바뀐다. 뒤를 돌아보면 시청광장 주위로 호텔과 고층빌딩이 즐비한데 눈 앞은 고색창연한 덕수궁 돌담길이다. 쌓여가는 고민에 머리 속이 뒤죽박죽이라면 없는 시간이라도 내 걸어보고 싶어진다.

시청역 덕수궁 돌담길, 최병훈의 '예술의 길, 사색의 자리'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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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길 초입부터 유선형의 아름다운 벤치들이 놓여 있다. 재질은 나무인데 모양은 조약돌을 닮아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같은 모양의 벤치들이 이어지고, 중간중간 강변 조약돌 모양의 석재 조형물도 눈에 띈다. 마치 강변을 따라 조약돌이 흩어진 듯한 모습이다. 그렇게 보니 돌담길 한 가운데 좁은 1차선 도로가 흐르는 강물을 닮아 있다. 지나는 자동차도 강물처럼 굽이쳐 달린다. 벤치와 조형물이 놓인 공간은 강변에 쌓인 모래사장을 연상시킨다. 확인차 멀리서 시야를 넓혀보면 실제 돌담길은 바람과 흐르는 물이 침식하고 퇴적시켜 만들어낸 자연을 닮아있다. 바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강변의 산책길이다.

시청역 덕수궁 돌담길, 최병훈의 '예술의 길, 사색의 자리'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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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서울시가 지정한 '걷고 싶은 거리' 1호이자 건설교통부에서 주관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만큼 '걷기에 참 좋은 길' 이다. 자동차가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길이 구불구불하게 굽어져 보행자를 배려하고 있고, 오른편 덕수궁안에서는 쭉 뻗은 키와 녹음을 자랑하는 나무들이 돌담 밖으로까지 얼굴을 내밀어 그늘을 만들어준다.

시청역 덕수궁 돌담길, 최병훈의 '예술의 길, 사색의 자리'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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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길은 서울시립미술관, 정동 극장으로 이어진다. 주변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무대다. 대한제국의 굵직한 사건들이 이곳을 무대로 펼쳐졌다. 고풍스러운 근현대식 건물들이 풍기는 편안함은 연인들의 데이트 산책길로도, 잡념이 많아 혼자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좋은 아늑한 길이다. 그 길이가 길지 않아 오히려 부담스럽지도 않다.

시청역 덕수궁 돌담길, 최병훈의 '예술의 길, 사색의 자리'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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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길에 완전히 적응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벤치들은 우리나라 아트퍼니처의 선구자로 불리는 최병훈 작가의 '예술의 길, 사색의 자리'이다. 2007년 서울시의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된 작품으로 예술과 공예, 디자인의 경계를 넘어 만들어진 한국적인 '아트벤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중에서도 작업 대상지의 역사, 생태, 문화적 매력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추려한 서울시의 의도에 잘 부합하는 사례로 꼽힌다.

시청역 덕수궁 돌담길, 최병훈의 '예술의 길, 사색의 자리'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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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그동안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바탕으로 돌, 나무 등 천연 재료를 사용해 무위자연 사상과 정체성을 살린 작품을 만들어왔다. 돌과 돌, 돌과 나무 사이에 철심을 박아 둘의 관계를 잇는다. 주로 돌의 자연미와 나무의 본질적 미감을 자연스럽게 살려 형태에 담긴 미의식을 강조해왔다. 서로 이질적인 자연 재료에서 오는 무거움과 가벼움, 거칠고 부드러움, 따뜻함과 차가움 등의 재료의 속성을 유기적으로 잘 어우러지게 하는것이 특징이다.

시청역 덕수궁 돌담길, 최병훈의 '예술의 길, 사색의 자리'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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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 프로젝트 역시 화강석, 마천석, 벚나무 등 천연의 재료를 가지고 자연을 닮은 의자 19점을 4개월 동안 제작해 설치했는데, 서로 다른 속성과 색깔의 재료들이 서로를 괴고 얹어 한 벤치에 조합되어있는 모양이다. '다름' 에도 불구하고 벤치마다 일관되게 느껴지는 차분함과 한국적인 미는 그가 작업에서 중요시 하는 자연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된 작품 세계에 있다고 보아도 좋겠다.

시청역 덕수궁 돌담길, 최병훈의 '예술의 길, 사색의 자리'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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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고인돌 모양의 나무 의자는 비어 있을 때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작가는 "공장에서 제품으로 만드는 딱딱하고 무심한 의자와 달리 덕수궁 돌담길과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어머니 무릎과 같은 편안함을 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덕수궁길이 사색하며 걷고 머무는 장소로 변화되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의자에 앉아보면 직선이 배제된 완만한 곡선들의 형상과 부드러운 촉감, 그리고 높지 않은 벤치 높이가 정서적으로 따뜻함과 안정감을 준다.

글:큐레이터 박소정 (info@trinityseoul.com)

사진:사진작가 류주항 (www.mattry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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