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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가들은 정말 잘 먹고 잘 살았나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조수에게 그림을 대신 그리게 하는 대작(代作)이 '관행'이라는 조영남의 해명은 때 아닌 '미술계 관행' 논란을 촉발시켰다. 미학을 전공한 진중권은 앤디 워홀 등을 언급하며 미술계 대작은 '관행'이라 못 박은 반면, 여타 미술전문가들과 작가들의 다수는 미술공동체 내 윤리적, 상식적 규범을 관통할 만큼 광범위한 관습적 전례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일각에선 몇몇의 섣부른 오지랖 때문에 작가들은 마치 남이 그린 그림에 사인이나 하는 부류인 냥 대중인식이 왜곡될 수 있다며 우려했다.

그런데 이번엔 "(반 고흐를 빼곤)예술가들 중에서 고통스럽게 작업하는 사람은 없고, 다들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진중권의 인터뷰 발언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말은 "작가가 홀로 고통스럽게 완성해 가는 과정을 높이 사기에 '작품'이라고 높여주는 건데 다른 작가에게 맡겼다면 그것은 '제품'이 아니냐"는 앵커의 질문에 나온 대답이었다.

진중권의 발언을 접한 작가들은 "최근 듣고 본 중 (예술인에 대한)가장 무지하고 잔혹하고 냉소적인 말"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필자 역시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쩐 일인지 그와 내가 아는 현장과 현주소, 지식과 경험 모두에서 너무 큰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주장과는 달리 예술가의 상당수는 작업에 있어 창작의 고통과 현실적 고통이라는 이중고에서 자유롭지 못해왔다.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비롯해 창작의 불가능성에 괴로워하다 죽음을 예상하며 자원입대한 대실 해밋, '고통을 안고 쓴다'는 말로 산고 속에서 작업했음을 고백한 한강, 자살로 생을 마감한 마크 로스코 역시 작업과정에서의 고통이 빚은 결과였다.

예술가들이 겪는 고통에는 경제적 고통도 만만치 않다. 미술사에 등장하는 그 많은 예술가 중에는 삼순구식(三旬九食)의 삶을 보낸 예가 그렇지 못한 사례보다 훨씬 많으며, 지금도 약80%의 미술인이 연간 수입 600만 원대에 불과한 현실 앞에 놓여 있다. 수입이 아예 없는 예술인도 36.1%에 달한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예술인의 절대 다수는 (잘 먹고 잘 살았기는커녕)생존조차 위협받는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가들의 적지 않은 수는 그 직업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이유로, 자유를 지향한 죗값으로 형벌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작업의 연속성을 끝없이 흔드는 고통의 다양한 진원을 통고의 시간으로 메운 채 창작을 위해 물리적, 정신적 자산을 끝없이 소모하고 있다. 그런데도 진중권은 "예술가들 중에서 고통스럽게 작업하는 사람은 없고, 다들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했다.

몰라서 한 말인지, 아니면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림을 '직접 그리지 않아도 예술가의 지위를 누리는' 소수가 반드시 모든 예술의 가치방식은 아니며, 그것이 미술계 관례 혹은 보편적 맥락은 더더욱 아님에도 '관행'이라 간주한 것은 부적절했다. 이전과 다른 미술의 정의가 동시대미술계 한쪽에서 배회하고 있음을 부각시키기 위해 예술가들이 느끼는 작업의 고통까지 싸잡아 평가 절하한 것도 옳지 않았다.

특히 오만이든 편견이든, 적어도 그 발언들이 예술가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밑동으로 한 것은 아니라는 여운은 지울 수 없다. 굳이 "(조영남의)작품을 씹는 작가들이라고 뭐 대단한 작품을 만드는 건 아니다"라며 2절까지 덧댄 것을 보면.

※홍경한은 미술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다. 미술전문지인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 월간 '경향아티클'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비평과 강의, 방송과 집필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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