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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전기/전자

'무에서 유' 창조한 한마디 "해봤어?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 발자취

탄생100주년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 발자취(상)

정주영 명예회장



[메트로신문 양성운 기자]이달 25일 고(故) 정주영(1915~2001)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태어난 지 100주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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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영위기로 한국 경제가 흔들는 상황에서 굳센 의지와 신뢰로 우리나라 산업화의 기초를 다진 정주영 명예 회장에 대한 기업인이나 기업들의 그리움은 커지고 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도전 정신'으로 성공 신화를 손수 일궈낸 인물이다.

강원도 산골 가난한 농가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정주영 명예회장은 16세에 소를 판 돈 70원을 갖고 상경해 지금의 현대그룹을 만들었다.

특히 최근 부모의 재산에 따라 금수저에서 흙수저까지 자식의 경제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수저 계급론'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주영 명예회장의 발자취를 되새겨봐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1984년 서산 간척사업 현장에서 공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위기극복 원동력 '명확한 목표로,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라'

자유기업원이 지난 2010년 전국 20개 대학 201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정주영 명예회장은 '존경하는 한국 부자' 1위로 선정된 바 있다.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위 정주영 명예회장(복수응답 포함 65%), 2위는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25%)로 나타났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자신을 "그저 부유한 노동자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범 현대가인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현대백화점그룹, KCC, 현대산업개발, 한라그룹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은 정주영 회장의 '해 봤어?' 정신을 기업문화로 삼아 경영에 근간으로 삼고 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직원들에게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지 말라"고 하면서 '근면·검소·친애'를 강조하기도 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구두가 다 헤질 때까지 신으면서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자주 갖는 현장경영이 그의 경영방식이었다.

새벽을 가르며 출근하는 정주영 명예회장, 매일 새벽 3시30분이면 기상해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청운동 자택으로 찾아온 아들들과 아침식사를 같이 한 뒤 걸어서 계동 사옥으로 출근하는 것이 관례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직원들과 시간을 보내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곤 했다. 현대중공업 울산본사를 방문하면 정주영 명예회장이 야유회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직원들과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진이 걸려 있다. 직원들 하나하나 고충을 들어주고 해결하는 방식이 그의 방식이었다.

이처럼 어려운 경영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솔선수범한 정주영 명예회장은 늘 직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며 리더십을 발휘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경영스타일은 오늘날 많은 CEO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1979년 사우디아라비아 젯다시 공공주택 공사현장에서 공사를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뛰어난 리더십 빛 발휘

정주영 명예회장은 1968년 2월 착공해 2년 5개월만인 1970년 5월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를 완성했다. 그는 공사가 시작되자 미군 폐지프차를 개조해 만든 탑차를 타고 현장을 누볐다. 그는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인부들을 독려했고 터널 굴착시 수맥을 잘못 건드려 사고가 나자 직접 착암기를 뺏어 들고 앞장서는 혈기를 보였다고 한다.

현대건설을 필두로 16개 건설사가 참여한 경부고속도로 공사는 세계 고속도로 건설역사상 단위거리 대비 10분의 1 수준의 가장 저렴한 비용과 최단시일 완공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이렇게 건설된 경부고속도로는 1970∼1980년대 그리고 그후 한국의 경제발전에 역동적인 활력을 불어넣는 국가 대동맥 역할을 하게 된다.

또 정 명예회장은 1967년 12월 현대차를 설립하면서 미국의 포드를 합작 파트너로 삼았다. 하지만 6년 뒤 포드와 결별하고 1976년 1월 순수 국산 자동차 1호인 '포니'를 만들어냈다. 현대차가 세계 자동차업체 중 16번째로 독자 모델을 개발한 회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새마을연수원에서(1970년대). 정주영 명예회장은 늘 자신을 '부유한 노동자'라고 표현했다.



1986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엑셀이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시장에 진출하는 위업을 이뤄냈다. 엑셀은 불과 4개월만에 미국에서 5만2400대가 판매됐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연간 800여만대의 차량을 생산하며 글로벌 순위 5위의 자동차 메이커로 부상했다. 최근에는 '제네시스' 브랜드를 론칭하며 고급차 시장에 뛰어들어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우리나라 조선업계가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는 것도 정주영 명예회장의 의지에서 시작됐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1971년 9월 사업계획서 한장과 조선소 예정부지인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 한장만을 들고 유럽으로 날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돈을 빌리고 배를 지을 조선소도 없이 선박왕 오나시스의 처남인 리바노스로부터 26만톤급 2척을 수주하는 거짓말 같은 일화를 만들어냈다. 그는 1972년 미포만에 현대조선소를 조성, 도크 1, 2호를 완공하고 수주한 대형유조선 2척을 건조해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 건설업체들의 해외 진출의 밑그림도 정주영 명예회장이 이뤄낸 것이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서산농장 방문 도중 웅덩이에 빠진 포니를 직원들과 함께 끌어내고 있다.



1차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5배 이상 뛰어오른 1974년 말 정주영 명예회장은 또하나의 승부수를 띄운다. "돈을 벌려면 세계의 돈이 몰리는 곳으로 가야 돼"라며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동 출사표를 던진 것. 당시 중동 건설 시장은 선진국들의 내로라하는 토목, 건설, 엔지니어링 회사들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그는 중동지역에서 어렵게 따낸 건설 프로젝트를 공기까지 단축하면서 척척 완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76년에는 단일공사로서는 세계 최대였던 9억3000만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지역 항만공사를 따내 중동 진출의 꽃을 피웠다.

포니엑셀 신차발표회(1985년)



◆다음은 정 전 회장의 연보.

▲1915년 11월25일 =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

▲1930년 3월 = 송전소학교 졸업

▲1939년 12월 = 변중석(당시 16세) 여사와 결혼

▲1940년 3월 = 자동차 수리공장 '아도서비스' 설립

▲1946년 4월 = 자동차 수리공장 현대자동차 공업사 설립

▲1947년 5월 = 건설보수업 현대토건사 설립

▲1950년 1월 = 현대자동차공업사·현대토건사 합병, 필동에 현대건설주식회사 설립

▲1950년 7월 = 현대상운㈜ 설립

▲1953-59년 = 한강인도교, 제1한강교, 인천 제1도크 복구공사 수행

▲1960년 = 현대건설, 도급한도액 1위로 성장

▲1961년 1월 = 무교동 사옥 건립으로 창사 14년 만에 사옥 소유

▲1964년 6월 = 단양시멘트공장 준공, 호랑이표 시멘트 생산

▲1965년 9월 = 태국 고속도로 공사 수주로 국내 최초의 대규모 해외공사 진출

▲1967년 = 소양강 다목적댐 공사 착수(4월. 73년 12월 완공),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으로 피선(4월), 현대자동차㈜ 설립(12월)

▲1968년 2월 = 경부고속도로 착공(2월. 70년 6월 완공), 현대·포드자동차 조립 기술 협정 체결, 현대차 '코티나' 생산(11월)

▲1969년 1월 = 현대건설 회장 취임

▲1970년 1월 = 단양시멘트공장을 현대시멘트㈜로 변경

▲1971년 2월 = 현대그룹 회장 취임

▲1973년 4월 = 현대조선중공업㈜ 설립

▲1974년 =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자동차서비스㈜ 설립

▲1975년 4월 = 현대미포조선㈜ 설립

▲1976년 = 한국 최초의 자동차 고유모델 '포니' 생산(1월), 고려산업개발(3월), 아세아상선㈜(3월), 현대종합상사㈜(12월) 설립

▲1977년 = 전경련 회장 피선(2월. 87년까지 5선 연임)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7월) , 현대정유㈜(7월) 설립, 영국 여왕 대영제국 커멘더 훈장 수여, 한국열관리협회(에너지관리공단 전신) 회장 피선

▲1978년 2월 = 현대조선중공업㈜을 현대중공업㈜으로 개명

▲1978년 8월 = 서산간척사업 착수(95년 8월 4천700만평 최종완공)

▲1981년 5월 = 서울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 피선, 같은해 9월 개최지 서울확정으로 유치 성공

▲1982년 7월 = 대한체육회장 피선

▲1983년 2월 = 현대전자㈜ 설립

▲1983년 10월 = 계동사옥 건립, 현대그룹 본사이전

▲1984년 = 서산 천수만 간척사업, 4천700만평 간척

▲1985년 = 아시아 최장 13.5㎞ 말레이시아 Penang교 완공

▲1986년 11월 = 현대산업개발㈜ 설립

▲1987년 1월 = 명예회장 취임(회장은 정세영)

▲1987년 = 전국경제인연합회 명예회장 취임

▲1989년 1월 = 북한방문. 금강산 공동개발의정서 제시

▲1991년 10월 = 현대석유화학㈜ 설립

▲1992년 = 통일국민당 창당(1월), 당 대표최고위원 피선(2월), 14대 국회의원 당선(3월), 14대 대통령 선거 출마·낙선(12월)

▲1993년 2월 = 국회의원직 사퇴, 통일국민당 탈당

▲1994년 = 러시아 고르바체프 수상 면담, 시베리아 자원개발 등 한·소 경제협력 논의

▲1995년 = 중국 장쩌민 수상과 한·중 경제협력 확대 방안 논의

▲1996년 1월 = 현대그룹 정몽구 회장 취임

▲1998년 = 정몽구-정몽헌 공동회장 체제(3월), 소 500마리 이끌고 방북(6월), 소 501마리와 함께 방북,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10월), 북한 금강산 관광·개발사업 개시

▲1998년 3월 = 현대아산㈜ 설립

▲2000년 5월 = 3부자 동시퇴진과 함께 명예회장직 사퇴

▲2000년 6월 = 방북, 김 국방위원장 면담

▲2001년 = 러시아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친선 훈장 수여, 3월21일 86세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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