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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의 딴생각] YS, X세대의 대통령

[송병형의 딴생각] YS, X세대의 대통령

X세대라 불렸던 우리에게 YS는 첫 대통령이었다. 정확히는 투표권을 가진 뒤 처음으로 뽑은 대통령이었다. YS 집권기에 우리는 한국사회의 오랜 이념적 속박에서 벗어났다. 사회적 권위에 연연하지 않고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봤다. 사회보다는 개인의 문제에 천착했고 개성을 당연시했다. 선배들은 우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대"라며 X세대라고 불렀다. 이전 세대에게 우리는 문화적 단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파격적인 X세대의 등장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개인적으로 YS가 문민시대를 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서거한 YS를 X세대의 대통령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다.

문민정부 시절 대학 캠퍼스의 공기는 가벼웠다. 선배들이 한국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했지만 절박함은 없었다. 모순에 대한 개혁이 이제 시작됐기 때문이다. YS는 집권하자마자 3당합당의 충격만큼이나 강렬한 개혁들을 쏟아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섰고, 감히 건드리지 못하리라 여겼던 하나회가 날라갔다. 다른 기득권 집단도 예외가 아니었다. YS는 공직자들의 재산공개를 의무화했고, 금융실명제로 강남부자들의 손발을 묶었다. 우리는 과거의 권위가 '가짜 권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이때 목도했다. 그리고 남아 있는 권위도 언젠가 실체가 드러날 거라 짐작했다. 더 이상 권위는 우리를 속박하지 못했다.

우리는 사실상 모든 권위에 저항했다. 교수들과 선배들의 일방적인 가르침에 의심을 품었고 검증하려고 했다. 지성인 냄새를 풍기는 고급문화보다는 모두가 즐기는 대중문화에 흠뻑 빠졌다. 우리는 전통적인 엘리트가 아닌 새로운 엘리트가 되고 싶었다. 우리가 권위라는 거품이 빠진 엘리트에 열광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당시 오렌지족 의사가 등장하는 미니시리즈 드라마가 인기를 구가했고, 대학가에서는 의대생들이 의사의 권위를 풍자하는 티셔츠를 맞춰 입었다. 캐나다인 의사 '노먼 베쑨'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한쪽에 '배 째'라는 글귀가 새겨진 티셔츠다. 티셔츠를 입은 대학 후배의 설명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수술도구를 환자 몸에 넣은 채 봉합하는 의사들의 실수를 풍자했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에서 권위는 이렇게 해체돼 갔다.

YS 시대는 국가라는 마지막 권위가 해체되며 막을 내렸다. 1997년말 갑작스런 구제금융 사태는 국가란 결코 실패하지 않는 존재라는 굳은 믿음을 무너뜨렸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때만큼은 초연할 수 없었다. 혹독한 시절에 대한 대비가 없었던 탓에 구제금융 사태는 한순간에 우리 세대를 좌절시켰다. 우리는 졸업을 미루거나 아니면 의미도 없는 대학원에 진학해 유예기간을 벌어야 했다. 그러고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취업장수생이 늘어갔다. YS의 시대는 X세대에게 큰 고통을 마지막 선물로 남겼다.

YS 시대를 돌이켜보면 이것만이 고통은 아니었다. 1993년 9월 지존파의 막장 살인극, 1993년 10월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1995년 4월 대구 지하철 폭발사고,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등의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고통스런 사건들이 꼭 YS 시대의 산물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랜 적폐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구제금융 사태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YS 시대가 X세대에게 어둠보다 빛이었다고 회고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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