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하희철기자] 박보영(25)은 귀여운 외모 만큼이나 밝고 명랑한 소녀적 이미지를 가진 배우다. 그래서 '오 나의 귀신님'에서 음탕한 귀신에 빙의된 나봉선을 연기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걱정 어린 시선이 많았다. 상반되는 이미지가 자칫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를 망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보영에게는 아역부터 다져놓은 탄탄한 연기력이 있었다. 자신에게 빙의하는 배우 김슬기를 철저히 관찰해 완벽히 그로 변신해냈고 본인 특유의 개성까지 첨가해 모든 우려를 불식시켰다. 긴 호흡의 드라마가 처음이면서도 극의 흐름을 온전히 이끌었고 상대 배우와의 케미까지 만들어내면서 '국민 여친'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왜 이제야 드라마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방극장에 잘 어울렸다. 박보영은 장편 드라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지 못했었다고 밝혔다.
"사실 드라마 현장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아역이었을 때 현장에서 늘 시간에 쫓기다보니 여유가 없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또 주위에서 드라마를 하시는 분들 말씀을 들어보면 일주일에 잠도 2~3시간 자고, 대본도 빨리 안나와서 외우기 바쁘다고 하셨거든요. 저는 빨리 못 외우는 편이니까 '난 안되겠구나'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막연했어요."
박보영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드라마를 선택한 것은 유제원 감독과의 만남이 큰 역할을 했다.
"원래 작품 정하기 전까지는 감독님과 미팅을 안 하는 편이에요. '오 나의 귀신님'은 대표님의 권유로 감독님을 만나게 됐어요. 하지 않을 건데 만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고민했었죠. 그런데 만나뵙고 이야기를 나눈 뒤 돌아서는 길에 하겠다고 했어요.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눈 건 아니지만 신뢰가 가는 무언가 신비로움을 가진 분이셨어요."
박보영의 선택은 옳았다. 유제원 감독은 현장을 누구보다 편하게 해줬다.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쓸 데 없는 시간을 줄여 쫓기듯 촬영하지 않았다. 양희승 작가도 늘 대본을 제때 집필해 시간을 맞춰줬다. 박보영과 이미 영화에서 만났던 촬영 감독은 그가 감정을 잡는 타이밍을 알아채고 흐름이 깨지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삼박자가 고루 맞아떨어진 팀워크 덕분에 촬영 현장은 늘 즐거웠고, 그 분위기는 화면 밖의 시청자들까지 전달돼 시청률 흥행으로 이어졌다.
"이걸 하면서 뭔가 이뤄야한다거나 하고 들어간 작품이 아니었다. 생각보다는 너무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시청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놀라곤 했어요. 그래서인지 현장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종방연 때는 스탭들이 너무 행복해했어요. 서로 시청률 봤냐며 난리도 아니었죠.(웃음) 저 역시 행복해요. 한편으로는 너무 슬프고요. 봉선이를 떠나보내야 하니까요."
박보영이 나봉선이라는 캐릭터에 애착을 갖는 것은 많은 사랑을 받은 것과 더불어 자신의 연기에 대한 한계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줬기 때문이다.
"저한테 이 작품이 온 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배우는 어쨌든 선택 받는 사람이니까요. 감독님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사실 나봉선이 저와 안 어울릴 거라고 했던 분들이 많으셨어요. 그렇지만 해보기 전까진 저도 그렇고 누구도 모르는 거 아닌가요? 저도 배우이기 때문에 최대한 다양한 걸 해보고 싶어요. 그런 식으로 변신하다 보면 '아 이런 것도 했구나'하면서 받아들이기 편하실 수 있게끔. 그렇게 하는 게 제 숙제죠."
그의 말처럼 '오 나의 귀신님'은 박보영에게 있어 도전이었다.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서 도전을 선택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때이른 성공이었다.
"'과속스캔들' 이후에 안 좋은 일이 겹쳐서 배우를 관두려고 한 적이 있어요. 저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하루 아침에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상황판단이 안 되는 나이였으니까요. 슬프게도 연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답을 내린 건 다시 좋은 마음으로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고 감사하면서 시작하자는 거였어요. 이 시기가 많인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마음가짐도 달라졌고 안전한 길은 잊고 기반을 다져가기로 했죠. 낭떠러지가 아닌 이상 위험한 선택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요. 20대니까 아직은 넘어져도 다시 할 수 있으니까요."
박보영은 연기의 한계를 느낄 때마다 그동안 쓴 일기장을 펼쳐본다. 거기에는 응원 받았거나 좋았던 일들이 쓰여있어서 다시금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을 되찾게 해준다. 인터뷰 할 때도 버릇처럼 일기장을 보고 온다는 박보영에게 있어 연기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