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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의 명화 에세이] 몽파르나스의 어벤저스를 그리다-마레브나

누구에게나 젊은 날, 가장 기억나는 동네가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그곳이 홍대입구다. 미대입시생 시절 경기도 일산에 살던 나는 재수생활을 하면서 홍대 앞에 있는 미술학원에 다녔고, 재수생들이 모여 있는 공부학원 역시 홍대 앞에 있었다. 지금은 미대입시학원이 많이 사라졌지만 2000년대 초반 홍대 앞은 학교의 정문을 등지고 반으로 잘라 놀이터가 있는 왼쪽은 대학생들의 거리였고, 오른쪽은 미대입시생들의 거리였다. 밤이면 온갖 밴드들의 연주소리가 들리고, 물감 묻은 앞치마를 입은 미대입시생들이 분주히 저녁밥을 사먹는 화려함과 치열함이 공존하던 곳. 홍대 앞은 십대 후반인 나에게는 늘 치열했던 동네였고 대학생이 되고나서는 모든 미대생들은 한 번씩 참가한다는 예술시장 '프리마켓'의 일원으로써 그날 번 돈은 그날 다 술값으로 탕진했던 내 기준에는 낭만적인 동네였다.

100년 전 프랑스의 파리에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예술의 낭만을 꿈꾸던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 있었다(물론 그들은 나보다 더 자유로운 보헤미안이었던 것 같지만). 바로 몽파르나스(Montparnasse)다.

학생들과 함께 한달 내내 주말마다 예술의 전당 을 관람하면서 나는 매일 몽파르나스에 놀러가는 기분이었다. 1900년대 초 파리에서 가장 예술적인 동네를 꼽자면 몽마르트와 몽파르나스일 것이다. 파리에서 가장 가난했던 동네를 뽑는다면 그것 역시 몽마르트와 몽파르나스일 것이다. 하지만 두 곳 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을지언정 정신은 풍요로운 동네였다. 센 강을 중심으로 마주하는 이 두 곳은 늘 예술가들의 낭만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예술의 도시 파리로 집결한 많은 예술가들은 집단으로 몽마르트와 몽파르나스에 거주했다. 모딜리아니 역시 처음엔 몽마르트에 있다가 몽파르나스로 이동했다.

당시 몽파르나스에는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영어가 공존했다. 스페인의 피카소, 러시아의 샤갈, 멕시코의 디에고 리베라, 페르낭 레제, 앙리 루소, 마티스등 다양한 나라의 많은 화가들이 몽파르나스에 모였다. 몽파르나스는 제2의 몽마르트였다. 몽마르트에 '세탁선(Bateau-Lavoir)'이라는 까페가 있었다면 몽파르나스에는 '라 로통드((La Rotonde)' 까페가 있었다. 고맙게도 라 로통드 주인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커피 한 잔만 시켜놓고 하루 종일 있어도 눈치를 주지 않았다고 하니 이 얼마나 천국 같은 곳인가.

"요즘은 파리에 끌린다. 이곳 몽파르나스는 15년 전의 몽마르트처럼 시인과 화가들에게 있어 저들의 소박한 삶을 기댈 은신처가 되었다."

당시 몽파르나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말이다.

그림1/ 마레브나/Modi, Kisling and Chaim Soutine / 1914



그림2/마레브나/Diego, Modi, Ehrenburg



러시아의 여성 화가이자 최초의 여성 입체파 화가인 마레브나(Marevna/Marie Vorobieff·1892-1984)는 고맙게도 그 때의 추억들을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감각적인 선으로 표현한 그녀의 크로키 속에서 우리는 모딜리아니의 모습과 그녀의 연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 뱅스타일의 헤어를 고수했던 모이스 키슬링 등을 찾을 수 있다(마레브나는 디에고 리베라가 프리다 칼로를 만나기 전 파리에서 그를 만나 연인이 되어 딸 마리카 리베라를 낳고, 훗날 그들의 딸 마리카 리베라는 배우가 된다.)

그들에게 몽파르나스는 어떤 공간이었을까? 그녀의 그림을 보며 눈을 감으면 우리는 100년 전 몽파르나스로 이동할 수 있다. 그곳에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예술가들이 있었다. 몽파르나스는 그들에게 영감의 장소, 휴식의 장소, 열정의 장소, 사랑의 장소였다.

그림3/마레브나/몽파르나스의 친구들에 대한 경의(Homage to Friends from Montparnasse)1962



마레브나는 자신과 젊은 날을 함께했던 동료 예술가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난 후인 1960년대에 위의 작품을 완성했다. 그림의 중앙에 몽파르나스의 전설이었던 훈남 화가 모딜리아니가 상체를 드러낸 채 늠름하게 서있고, 그의 오른쪽 위에 그의 영원한 반려자인 잔느가 있다. 잔느의 옆에는 마법사 모자를 쓰고 자신이 쓴 시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막스 자콥, 그리고 그 아래로 모딜라니가 세상을 떠날 때 함께 했고 모딜리아니와 공동작품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폴란드 출신 화가 모이스 키슬링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 가장 상단에는 시인이자 화상이었던 즈보로프스키의의 모습이 보인다. 그림을 그린 마레브나는 화면의 제일 왼쪽 하단에 딸 마리카와 함께 있다. 그 위에 디에고 리베라와 우크라이나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일리야 에렌부르크, 갈색 상의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프랑스 화가 카임 수틴이 보인다.

화려했던 젊은 날의 인생을 함께 나눈 그들의 모습은 마치 '몽파르나스의 어벤저스'같다. 각기 다른 분야였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과 개성만큼은 넘쳐흐르던 그들에게 그녀의 그림은 말한다. "이제는 전설이 된 예술가 친구들과 함께였던 그날의 몽파르나스가 내 인생 최고의 장소였노라고." 그리고 나는 그녀의 그림 덕분에 치열했고 낭만적이었던 나만의 소중한 동네를 오랜만에 기억해낸다.

그림4/마레브나/자화상/1929 27 x 22 cm/Musee du Petit Palais, Paris, France



이소영(소통하는 그림연구소-빅피쉬 대표/bbigsso@naver.com/출근길 명화 한 점, 엄마로 다시 태어나는 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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