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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산책] 거대한 뿌리를 다시 돌아보며



"독립을 외쳐봐야 부질없다. 강해지는 법을 모르는 이상, 약자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설령 독립이 주어진다 해도 우리는 이득을 볼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윤치호의 일기에 나오는 글귀들이다. 당대 최고 지식인이자 감리교 원로였던 윤치호는 학식, 재력, 명망을 모두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독립운동 무용론을 내세운다.

물론 독립의 가능성까지 포기하진 않았다. "일본인은 조선인의 독립열망을 꺾고자 할 때 조선이 역사상 한 번도 독립국이었던 적이 없었다고 주장해서 조선인을 극도로 격분케 만들곤 한다. 그 주장이 맞는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곧 조선은 결코 독립국이 될 수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본인은 지난 2천년 동안 게다를 신어왔다. 그렇다면 일본인은 절대로 구두를 신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뛰어난 반론이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결국 친일협력자로 전락하고 만다. 당장은 힘이 없으니 훗날을 도모하자면서 교육에 매진했으나, 기본적으로 윤치호는 현실의 정세에 따라 처신을 결정한 기회주의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늘 상 말했다.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 때를 기다리고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나마 있던 이빨마저 뽑히고 말았다.

그가 뼛속 깊이 친일파였던 것은 아니었다. 3,1 운동이 야만적으로 진압되는 것을 보고 그는 끝없는 비통함을 느낀다. 그러나 "우선 일본인에게 호감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억울한 희생을 막자는 논리였고,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건 독립의지를 소멸시키는 쪽으로 기여했다. 일본처럼 실력을 양성하자고 했으나 독립의지가 없는 조선인들의 실력이란 일제의 도구가 될 뿐인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 자신도 마침내 그런 도구가 되고 말았다. 도대체 그 실력이란 그럼 뭔가? 천재적인 인물이 그렇게 허무하게 낭비되었다.

시인 김수영은 그의 시 "거대한 뿌리"에서 근대화의 대단한 성과물로 내세워진 당시로는 웅장했던 제3한강교 철근기둥 조차도 우리 역사의 전통에 비하면 "좀 벌레의 솜털"이라고 일갈한다.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 연장선에 있는 박정희 식 산업화의 자랑을 단번에 묵살해버린 것이다. 자기 역사의 정신적 뿌리에 담긴 깊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제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도 결국 길을 잘못 들어서고 만다. 한 나라의 운명도 다르지 않다.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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