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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안식처 '낙선재'





조선의 궁궐에는 언제까지 사람이 살았을까? 놀랍게도 불과 25년 전인 지난 1989년 4월 말일까지다. 88세를 일기로 생을 마친 '영친왕의 비' 이방자 여사가 주인공으로, 그가 살았던 곳은 창덕궁 안에 있는 '낙선재'였다.

낙선재란 이름은 군자의 덕목 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선(善)'을 즐긴다는 데에서 왔다. '임금이 선행을 베풀면 세상이 즐거워진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특히 창덕궁의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단청이 없어 수수한 멋을 풍긴다.

그런 낙선재가 세워진 것이 지난 1847년의 일이니, 임진왜란이 끝난 뒤 조선의 정궁으로 기능했던 창덕궁의 여러 건물들 가운데서도 역사가 비교적 짧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남달랐다. 일제강점기였던 1917년 창덕궁에 큰불이 나자 순종이 낙선재로 이어해온 것이다.

이후 낙선재는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을 전하는 건축물로 역할을 이어갔다. 순종의 비였던 순정효황후를 비롯해 순종의 이복동생이자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그의 비 이방자 여사, 그리고 고종의 고명딸 덕혜옹주 등이 모두 낙선재를 비롯한 그 부속 건물에서 숨을 거뒀다. 한 마디로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안식처였다고 할 수 있다.

행인지 불행인지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궁궐 전각들이 헐려 나갈 때에도, 그리고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낙선재는 별다른 화를 입지 않았다. 그래선지 낙선재 주변에는 순종이 탄생한 관물헌을 비롯해 순정효황후가 머물던 석복헌, 덕혜옹주가 기거했던 수강재, 그리고 궐내를 굽어볼 수 있는 취운정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요즘 낙선재 주변을 걷다 보면 매화에 이어 살구꽃과 앵두꽃 등이 만말해 있는 걸 볼 수 있다. 비운의 역사와는 관련 없어 보이는 그 화려함에 망국의 비애감이 더 처절하게 느껴지곤 한다. 최근에는 매월 음력 보름마다 보름달과 창덕궁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달빛기행'이란 이름의 야간 개방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대한제국의 마지막 숨결을 느껴보기 위해서라도 꼭 한 번 방문해볼 만하다.

/'다시 서울을 걷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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