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AI영상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유통>제약/의료/건강

[연중기획] 다시 공정사회다…⑩ 순한 '을'에서 악질 '갑'으로 변신하는 제약사

지난해 12월 한국의약품도매협회 회원들이 제약사 '갑'의 횡포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국의약품도매협회 제공



#1 지난해 12월 한국의약품도매협회 회원 200여 명이 서울 강남의 A제약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앞서 황치엽 도매협회 회장도 A제약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도매업계에 금융 비용, 카드수수료 등의 부담을 전가하는 제약업계의 횡포를 중단하고 유통마진율을 인상하라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A제약사와 도매협회의 갈등이 깊어지자 이경호 한국제약협회 회장이 직접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이 사건은 제약사와 도매상 간의 '갑을' 관계가 곪을 대로 곪은 가운데 발생한 사건이다. 겉으로는 유통마진율 인상 갈등 같지만 제약사들의 의약품을 납품하고 유통해야 하는 '을'의 위치인 도매업계가 고양이를 문 꼴이다.

#2 지난 2011년 글로벌 제약사 B는 자사의 오리지널 의약품의 복제약 출시를 막기 위해 국내 대형 제약사 C와 담합을 벌였다. 복제약이 출시될 경우 신약의 가격이 낮아지고 자신의 시장 점유율이 하락할 것을 우려한 B가 당시 C와 맺은 전략적 제휴를 이용해 은근한 압박을 가한 것이다. 이는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의 '갑을'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제약 유통에 드리운 또다른 '을'의 그림자

병원에는 만년 '을'인 제약업계에도 해뜰 날이 있다. 바로 제약사의 의약품을 유통·납품하는 도매상과의 관계에서다. 제약사와 도매상 간 형성된 갑을 관계 역시 만만치 않은 사이다.

제약업계의 특성상 의약품 생산은 제약사가, 유통은 도매협회를 대표로 하는 도매상이 맡는다. 즉 물품을 공급하는 제약사가 갑의 위치에 있고 물품을 공급받는 도매상이 을이 되는 수직 구조가 형성된다.

이런 관계를 통해 제약사는 도매상을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한다. 일례로 2012년 2월에는 제약사들의 무리한 요구로 도매업계가 코너에 몰린 적이 있다. 일부 제약사들이 의약품 공급을 거부하겠다며 도매업체들에게 의약품을 제공하는 약국명과 약사 이름, 상세 주소 등의 의약품 판매 자료를 요구한 것이다.

개인정보에 속하는 신상 정보이기 때문에 도매상은 제공할 수 없었지만 제약사의 압박과 불이익이 예상되는 만큼 도매상들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대형 제약사보다는 주로 중소 제약사에서 이런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도매상조차 관련 사실의 노출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도매업계 한 관계자는 "의약품을 생산·유통하는 제약사와 도매상은 공생해야 하는 관계다. 하지만 갑의 입장에서 도매상을 상대하는 제약사들이 많으며 도를 넘어선 행위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상생의 탈을 쓴 제약사 간 '갑을' 관계

제약업계의 '갑을' 관계는 도매업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오리지널 의약품이라 할 수 있는 신약이 부족한 국내 제약사들은 글로벌 제약사 제품의 영업과 판매를 주 수입원으로 해 지금까지 성장했는데 여기서 글로벌 제약사가 '갑'이 되고, 국내사가 '을'이 되는 관계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다시 말해 제약사와 도매업계가 공급과 유통으로 갑을 관계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국내 제약사가 판매 실적을 올리면 글로벌 제약사들이 제품을 회수해가는 부분이다. 국내 제약사의 영업과 마케팅을 통해 어느 정도 국내 영업망이 확보되고 제품이 국내에서 대형 품목으로 성장하면 판권을 되찾아가는 경우다.

특히 지난 2002년 한국에 진출한 한 글로벌 제약사는 국내 한 대형 제약사에 자사 제품을 독점 판매케 했는데 결국 이 글로벌 제약사는 제품의 판권을 모조리 회수해갔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이 생겨도 글로벌 제약사들이 제품을 회수하면서 국내 제약사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국내 제약사 한 관계자는 "일정 부분 매출이 보장되는 글로벌 제약사 제품을 판매하다 일방적으로 회수 통보를 받는 것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글로벌 제약사의 오리지널 품목을 도입하기 위해 국내 제약사들은 비밀리에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등 서로 보이지 않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소유권이 없는 국내사는 갑을 관계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국내 의료기기 시장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막강한 자금력과 기술력을 갖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 원하는 대로 수입업자와 대리점 간의 계약을 체결하는 것. 특히 글로벌 기업의 담당자가 자의적으로 계약서를 해석하는 경우도 많고 본인들에게 유리하도록 적용하는 일도 적지 않다.

하지만 수입업자와 대리점 점주는 이들이 다른 업체와 계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불만이 생겨도 어떤 항변도 하지 못한다.

의료기기 한 관계자는 "계약을 맺고 있던 글로벌 기업의 담당자가 새롭게 부임하면 그 사람의 비유를 맞춰줘야 하는 것이 관례다. 저들에게는 이익이 목적이지만 우리는 생존이 달린 문제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도 참는 것을 빼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갑은 이익이 우선이라 이익을 찾아가면 되지만 을에게는 생존과 직결된 갑과의 관계가 언제나 숨통을 쥐어오는 상황이다. 상생해야 하는 관계지만 갑을 관계의 냉정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