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래 셰프가 말하는 요리 본질과 상생 레시피, "로봇이 웍을 돌려도 사람 마음까지 움직일 수는 없으며 중식 미래는 한국적 담백함에 있다."
1970년대 아날로그 시절부터 50여 년간 주방을 지켜온 사내가 있다. 웍질 한 번에 시대의 풍파를 담아내고 칼질 한 번에 혼란을 썰어냈던 그는 이제 한국 중식의 산증인이자 대명사가 됐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를 비롯해 각종 미디어에서 대중과 소통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여경래 셰프를 만났다.
최근 들어 외식 업계에서도 화두는 단연 '디지털 전환'이다. 첨단 인공지능 기술이 최적의 맛을 계산해 레시피를 쓰고 로봇 손이 팬을 휘두르며 대량 생산하는 '푸드테크'의 범람 속에서 그는 '인간과 기술의 상생'을 논하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가의 품격은 화려한 기술이 아닌 시대 흐름을 읽는 안목과 세상을 향한 긍정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인간 셰프만 지킬 수 있는 영역은.
"요리의 가치는 명쾌하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입맛에 맞는 음식을 오랫동안 지켜내는 것이다. 기술은 그 과정을 돕는 수단일 뿐, 결국 음식을 먹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셰프의 몫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이나 로봇 역시 상생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인공지능으로 개발한 땅콩잼을 활용한 중식 레시피를 제안받은 적이 있다. 사실 중식에서 땅콩잼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식재료는 아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제안한 조합으로 요리를 해보니 의외로 맛이 훌륭했다. 인간만이 가진 섬세함에 비하면 아직 부족해도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이 본질적인 맛을 유지하는 데 쓰일 것이다."
-나만의 요리 철학과 원칙이 있다면.
"대만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화교 2세로 태어났지만 스스로를 '뼛속까지 한국인 입맛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함에 의심이 없다. 여러나라 음식을 겪어보고 해외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다양한 식재료를 접할 때마다 이 음식은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잘 맞을까를 가장 먼저 고민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소스를 응용해 이색적인 맛을 내려고 노력하거나 반대로 생소한 소스를 접목하더라도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을 개발했다. '한국인 입맛으로의 재해석'이 요리 인생의 핵심 원동력이다."
- 'K중식'의 경쟁력과 잠재력은.
"과거부터 최근까지 대중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커지면서 중식 또한 K푸드의 한 축을 다지고 있다. 이 밑그림이 '한국형 중식의 세계화'라는 큰 크림으로 완성되길 바란다. 중식이 한국에서 인기 요리로 자리잡기까지 그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한국 중식은 절대 한순간의 인기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화교 중심의 중국 음식이 시장을 주도했지만 현재는 중국 음식점 조리사의 95% 이상이 한국인이다. 한국인 조리사들이 중식 요리에서 입지를 넓히면서 기존의 기름진 중식이 전 세계에서 가장 담백하고 깔끔한 중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한국인 기호에 맞춰 발전해 'K중식'이 된 것이다. K팝, K푸드와 같은 한류 돌풍에 K중식의 열기를 더해 세계 시장으로 확산해야 할 때다.
실질적으로 후배들에게 해외 진출을 강력히 권한다. 특급 호텔을 비롯해 국내 시장의 좁은 문에서 도전을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인 조리사의 저력을 바탕으로 크고 작은 글로벌 무대를 겪어봐야 한다. 낯선 땅에서 음식, 사람, 언어, 문화 등 다방면을 부지런히 경험할 때 얻는 배움이 있다."
- 후대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덕목은.
"어느 분야에서든 우선 최선을 다 해보는 과정 자체에 삶의 의미가 있다. 빠르게 성공하려고만 하면 반드시 중간에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하며 무엇보다 '급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좋은 스승을 따라야 한다. 돌이켜보면 처음 일을 시작한 70년대는 요리책 한 권, 레시피 하나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고 절실함을 느끼게 했다. 또 15살 어린 나이에 마주한 당시의 주방 환경은 거칠었다. 방황하는 친구들도 많았고 자칫 나쁜 길로 빠지기 쉬운 유혹도 많았다.
제 인생의 '천우신조(天佑神助)'는 예술에 가까운 기술을 가진 스승과 실력 있는 선배들을 만난 것이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고 1시간씩 일찍 출근하며 성실하게 쫓다보니 기술자의 길이 열렸다.
또 어떤 환경에서도 단점보다 장점을 보도록 연습했다.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사람 많은 곳에서 크게 웃어보는 훈련도 해 봤다. 지금의 미소도 사실은 수만 번 연습의 결과물이다. 이런 긍정 마인드는 요리에도 투영된다."
- 화교사회 발전시킨 문화의 힘, 요리.
"요리는 언어를 뛰어넘어 마음을 전한다. 한국인들이 중식을 오랫동안 좋아해 주신 덕분에 외식업 발전에도 꾸준한 기여를 할 수 있었다. 화교 사회와 한국 사회가 요리를 통해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인 긍정적인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여경래의 상생 레시피, '후진 양성'
"그동안 바쁘게 달렸고 현장에서 은퇴를 고려할 나이가 됐다. 비로소 이제야 '내가 무엇 때문에 살았는가'를 정리하며 머릿속을 비우는 여유를 가져보고 싶다. 자서전 같은 기록도 남기고 싶고 어린 시절 꿈꿨던 만화가의 감성도 되찾고 싶다.
하지만 결국 나아가야 할 방향은 '후진 양성'이다. 그동안의 시행착오와 기술이 후배들에게 올바른 이정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인터뷰 내내 여경래 셰프는 환하게 웃었다. 앞서 그가 말한 '웃는 연습'은 그 자체로 대가의 품격이 되어 있었다. 미소와 긍정은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의 맛이며 그것이 바로 여경래가 50년간 완성한 진정한 레시피다. 한국 중식이 전 세계에서 가장 담백해지고 있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삶 또한 담백하고 깊은 기품을 빚고 있다.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
Copyright ⓒ Metro. All rights reserved. (주)메트로미디어의 모든 기사 또는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주식회사 메트로미디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ㅣ Tel : 02. 721. 9800 / Fax : 02. 730. 2882
문의메일 : webmaster@metroseoul.co.kr ㅣ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이장규 ㅣ 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가002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2546 ㅣ 등록일 : 2013년 3월 20일 ㅣ 제호 : 메트로신문
사업자등록번호 : 242-88-00131 ISSN : 2635-9219 ㅣ 청소년 보호책임자 및 고충처리인 : 안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