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의 작은 시골에서 태어난 소년은 매일 20㎞ 가까운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다. 추운 겨울이면 손발이 곱아 책상 앞에 앉아도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수십 년 후 그는 "조금만 더 공부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고 회상하며 자신의 아쉬움을 다음 세대 학생들이 겪지 않도록 기숙사를 짓고 도서관을 기부하는 사회공헌으로 이어갔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이야기다.
1941년 1월 11일, 전남 순천군(현재의 순천시) 서면에서 태어난 그는 순천고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으나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독학으로 학사 과정을 마친 뒤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에서 행정학 석·박사 과정을 밟으며 공부를 이어갔다. 결국 1997년, 건국대는 그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인생의 우회로조차 학문과 연결 지은 집념은 훗날 그의 교육 철학으로 이어졌다.
◆건설업에서 임대주택으로
이 회장이 본격적으로 기업인의 길에 들어선 건 1970년대 중반이다. 1975년 우진건설산업을 세워 해외 중동시장에 도전했고 상장까지 이뤘다. 그러나 세계 경기 침체와 건설 불황이 겹치며 회사는 큰 위기를 맞았다. 1979년 부도, 1983년 폐업이라는 쓰라린 경험은 그에게 '속도보다 안정'의 교훈을 남겼다.
그는 이후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서울 당산동에 삼신엔지니어링을 세우고 재기의 길에 나섰다. 같은 해 사명을 '부영주택흥산'으로 바꾸고 임대주택 사업에 본격 뛰어 들었다.
임대주택은 정부의 국민주택기금을 활용할 수 있어 초기 자금 부담이 적었고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불안정했던 건설 시장에서 넘어지지 않는 세발자전거처럼, 임대주택은 그에게 안정적 경영의 해법이었다.
1993년 '부영'으로 사명을 바꾸며 회사는 성장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해 주택건설실적 2위로 뛰어올랐고 1998년에는 1만4000가구 이상을 공급하며 실적 1위를 기록했다. 2001년 누적 공급 10만가구를 돌파했고 도급순위도 1997년 80위권에서 2003년 18위로 급등했다.
"기업은 망하지 않고 존재해야 한다. 그러려면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세발자전거는 속도는 늦지만 가다 쉬어갈 수도 있고 안전하다."
이 회장은 자신의 경영 철학을 '세발자전거론'이라고 불렀다. 두발자전거는 빠르지만 멈추면 넘어지고 세발자전거는 느리지만 안정적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철학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입증됐다. 다른 건설사들이 위기를 맞을 때, 부영은 임대주택 사업을 통해 안정적 유동성을 확보하며 위기를 넘겼다. 그의 세발자전거는 느리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글로벌로 뻗은 부영
2007년 이후 부영은 주택 중심 구조를 넘어 다각화에 나섰다. 미국에 '부영아메리카'를 설립하고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인도차이나 반도로 진출했다.
2008년에는 캄보디아에 부영크메르은행, 2009년 라오스에 부영라오은행을 세우며 금융사업에도 뛰어들었다. 2013년에는 캄보디아 통신사 '캄인텔'을 인수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국내에서도 공격적인 자산 확충이 이어졌다. 2008년 제주 부영CC 개장을 시작으로 2011년 무주덕유산리조트 인수, 2015년 제주·순천에 호텔 개장, 2016년 안성 마에스트로CC와 태백 오투리조트, 제주 더클래식 골프&리조트 등 레저 자산을 확보했다.
2016년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사옥,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2017년 송도 포스코건설 사옥 인수 등 수도권 핵심 오피스 빌딩도 사들였다. 주택건설사에서 종합 부동산·레저 그룹으로 확장하는 과정이었다.
◆교육과 보육, 사회공헌의 뿌리
이 회장의 사회공헌 철학은 교육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어린 시절 긴 통학길의 불편함이 그의 교육 기부로 이어졌다. 1991년 순천 부영초등학교를 시작으로 30년 넘게 초·중·고·대학교에 기숙사, 도서관, 체육관 등 교육시설을 기부했다.
현재까지 130여 곳의 교육기관이 그의 손길을 받았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KAIST 등 12개 대학에는 '우정원'이라는 이름의 교육시설을 세웠다.
그는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로,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8월 KAIST 기숙사 리모델링·기부 약정식에서도 교육을 장기적 투자라고 표현했다.
보육 지원도 활발하다. 전국 부영아파트 단지에는 '부영 사랑으로 어린이집'이 운영된다. 무상으로 공간을 제공하고 운영비를 지원하며, 전국 48개 어린이집이 도지사상·시장상·의장상 등 122개의 상을 수상했다.
2023년에는 국내 최초로 '출산장려금 1억원'을 도입했다. 2021~2023년 출산 직원에게 70억원, 2024년에는 28억원을 지급해 누적 98억원을 지원했다. 시행 1년 만에 그룹 내 출산율이 증가했다. 사회적 화두인 저출산 문제에 기업이 직접 대응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기업가로서의 궤적
이 회장의 경영 인생은 성공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 2018년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법원의 판결을 거쳐 실형이 확정됐다. 그는 2021년 가석방으로 풀려났고 2023년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돼 사면·복권됐다. 이후 다시 대한노인회 회장직에 복귀하며 재기에 나섰다.
또한 비상장 계열사 고배당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광영토건이 순이익보다 많은 규모를 배당하면서 사익 편취 논란이 불거졌다. 법적 위법은 아니었으나, 지배구조 투명성 문제가 제기됐다. 이런 논란은 한국 대기업의 구조적 한계와 맞닿아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회장은 1980년대 건설사 부도로 한 번 무너졌지만 임대주택이라는 틈새에서 재기했다. "세발자전거는 넘어지지 않는다"는 그의 철학은 외환위기, 금융위기, 그리고 개인적 시련 속에서도 부영을 지탱했다.
현재 부영은 임대주택을 중심으로 금융, 레저, 호텔, 교육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한 기업집단이다. 창업자의 굴곡진 인생과 함께 기업도 파란만장한 궤적을 걸어왔다.
◆출생 및 학력
1941년 1월 11일 전남 순천군(현재 순천시) 서면에서 태어났다. 순천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으나 중퇴했고 독학사로 학사 과정을 이수한 후,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행정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건국대학교에서 1997년, 37년만에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주요 경력
2024 ~ 현재 제19대 대한노인회장
2017 ~ 2020 제17대 대한노인회장
2015 ~ 현재 제3대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 총재
2008 ~ 현재 학교법인 우정학원 이사장
2003 ~ 2005 주택산업연구원 이사장
2000 ~ 2004 한국주택협회 회장
1994 ~ 현재 부영그룹 회장
1975 ~ 1983 우진건설산업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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