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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퐁피두 센터' 한국 유치의 의미

프랑스 파리 보부르 소재 '퐁피두 센터'는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프랑스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힌다. 1977년 설립됐다. 퐁피두라는 이름은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조르주 퐁피두에서 따왔다. 그래서 정확한 이름은 '조르주 퐁피두 국립 예술문화센터'다. 전시실 외에도 카페, 공연장, 극장, 공립도서관, 자료실 등을 구비하고 있어 사실상 복합문화센터에 가깝다.

 

배기관과 통풍구가 그대로 노출된 7층 높이의 건물 자체부터 인상적인 퐁피두는 현대미술의 본거지답게 연간 수백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한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만 해도 약 350만 명이 이곳을 찾았다. 마르셀 뒤샹에서부터 마티스, 샤갈, 칸딘스키, 마그리트, 달리, 앤디 워홀, 마크 로스코, 요셉보이스 등 20세기를 함께 한 거장들의 작품을 상당수 소장하고 있으니 충분히 그럴만하다.

 

퐁피두 센터가 오는 2025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들어설 전망이다. 19일 한화그룹과 퐁피두는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퐁피두 센터 한화 서울'(가칭)을 설립·운영하는 데 합의하는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2019년 개관한 중국 상하이에 이어 아시아 두 번째다. 개관일로부터 4년 동안 한국에서의 퐁피두 센터 운영권을 보장받고 매년 퐁피두 센터 소장품 중 대표 작가 작품이 포함된 기획전시를 열게 된다. 운영은 한화문화재단이 맡을 예정이다.

 

사실 해외에 분관을 두거나 현지 기관과의 파트너십을 맺는 형식을 띤 글로벌 미술관의 세계 거점화는 오래됐다. 한국 진출설도 줄곧 있어 왔다. 잊을만하면 구겐하임 미술관과 루브르 박물관의 한국 진출 소문이 돌았고, 퐁피두 분관이 만들어진다는 내용도 심심찮게 회자됐다.

 

이중 퐁피두는 단골 메뉴였다. 약 10여 년 전부터 구체적인 장소까지 거론되며 분관 유치의 가능성을 점치게 했다. 하지만 말만 무성했을 뿐 성사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2021년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이어 지난해엔 인천광역시가 퐁피두센터 분관 유치 의사를 드러냈고, 최근엔 퐁피두 관계자의 방한과 현장 실사로 '퐁피두 부산'의 실현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결과적으론 퐁피두와 한화의 양해각서 체결로 긴 시간 지속된 지방자치단체들과 기관들의 '구애'도 주춤하게 됐다. 일부 지자체는 타 미술관 유치로 방향을 수정할 계획이다. 그런데 왜들 그토록 해외 미술관 한국 분관 설치에 목을 매는 것일까.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경제적 효과다. 세계적인 미술관을 데려올 경우 해당 지역은 주요 관광 명소가 되면서 많은 방문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숙박업, 요식업, 운송업 등 지역 경제에 작지 않은 수익을 안겨준다.

 

또 하나는 일자리 창출이다. 미술관은 지역의 비중 있는 고용주로서 전문직은 물론 시설 종사자 등에게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하게 된다. 여기에 알찬 콘텐츠로 무장한 미술관 유치는 해당 도시와 공동체에 문화적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이는 문화시설이 갖는 중요한 의미다.

 

그러나 여러 긍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저명 미술관의 해외 분관은 미술이라는 고급 콘텐츠를 팔아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돈벌이용 '프랜차이즈 사업'이기도 하다. 실제 이번 퐁피두와의 협약으로 한화가 지급해야 할 로열티, 작품 대여료, 컨설팅 지원비 등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외국 미술관이 들어온다고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다. 우선 지금처럼 대도시에 미술관이 세워질 경우 그러잖아도 심각한 지역 간 문화적 불균형과 문화향유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대중에게 주목받을 만한 전시와 작품에만 집중하는 결과에 따른 다양성 부족, 지명도에 의한 서양미술 중심의 미적 편식 역시 우려된다. 나아가 비판 없는 서구 중심적 문화가치 수용은 은연중 강요받는 문화제국주의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를 요한다.

 

스스로 생각해볼 문제도 있다. 너도나도 글로벌 미술관 분관 설치에 노력을 기울이나, 그것 못지않게 자국 미술관의 질적 성장과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닐 만한 작가 인프라 구축에 얼마나 투자해 왔는지, 지자체들은 드물게 성공한 빌바오 구겐하임 사례를 예로 들며 유명 미술관 유치에 발 벗고 나서지만 막연한 정치적 성과주의에 기댄 것은 아닌지 등이다.(빌바오 구겐하임이 지자체와의 긴밀한 협업, 공간적 특성 및 지리·생태적 환경과 맞물린 다양한 전략의 산물임을 대부분은 잘 모른다.)

 

퐁피두 센터 한국 유치는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공동체의 삶과 역사를 변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는 게 미술관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우린 과연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실제 무엇을 실천하고 있는지 곱씹게 한다. 비가 새는 공립미술관, 작품 한 점도 구입하지 못하는 소장품 예산, 철새 혹은 카르텔이 지배하는 미술관 인사…. 이 또한 퐁피두가 던지는 하나의 의미요, 필요한 자문(自問)이다.■ 홍경한(미술평론가, LHC Larchiveum 총괄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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