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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가 만난 기업人]4대째 두부 제조 '외길'…김구원선생두부 김동윤 대표

 

증조부가 전수한 두부, 6·25전쟁 직후 조부가 본격 사업

 

프로골퍼 출신 김 대표가 부친에 이어 가업 브랜드화까지

 

산수유로 간수 사용‥8가지 약재 넣어 '기력두부' 만들어

 

마켓컬리, 쿠팡등 통해 판로 개척도‥여러 콩 제품 제조

 

김 대표 "세계 시장에 맛 좋고 건강한 한국 두부 알릴 것"

 

'김구원선생두부'를 4대째 이어오고 있는 김동윤 대표가 공장에 있는 회사 간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승호 기자

【김포(경기)=김승호 기자】 서울외곽순환도로를 달리다 김포IC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고촌 현대힐스테이트 단지 인근에 있는 '김구원선생두부'. 이곳은 김포지역에서도 꽤 알려진 두부전문점이자 지난해부터는 공중파·종편의 맛집프로그램 등에도 심심치않게 소개되면서 두부를 좋아하는 미식가들 사이에선 꽤 유명해진 곳이다.

 

브랜드속 주인공인 '김구원 선생'은 현재 회사를 이끌고 있는 김동윤 대표의 할아버지 존함이다.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던 증조할아버지(김의창 선생)는 할아버지(김구원 선생)께 두부 만드는 방법을 전수해 주셨다. 할아버지는 그 기술을 갖고 서울 영등포로 넘어와 두부공장을 차렸다. 그 때가 1956년이다. 할아버지는 먹고 살기 위해 매일 두부를 만들어 자전거를 타고, 손수레를 끌고 영등포 일대를 돌아다니며 두부를 파셨다."

 

김동윤 대표가 아버지이자 지금은 고인이 된 김성호 선생에게 전해들은 할아버지의 '두부 외길 인생이야기'다.

 

6·25전쟁이 막 끝나 모든 것이 폐허가 되고,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니 할아버지의 두부공장이나 그곳에서 만든 두부의 모양이 어땠을지는 쉽게 상상이 가질 않는다.

 

김 대표의 부친도 당신의 아버지인 김구원 선생을 따라 자연스럽게 두부를 만들었다. 부친은 10살때부터 김구원 선생을 도와 두부납품하는 일을 돕다가 군대를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1대 김의창 선생→2대 김구원 선생→3대 김성호 선생에 이르며 3대째 두부를 가업으로 이어온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부친이 쓰러지셨다. 그 때까지만해도 김동윤 대표에게 두부는 그냥 '아버지의 일' 정도로밖에 인식이 되질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김 대표는 골프에 입문해 프로골퍼까지 했고, 당시에도 대학에서 골프를 가르치며 두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골프만하던 내가 두부공장을 (물려받아)해야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그런데 병석에 누워계시던 아버지께서 '하지마라. 네 일을 해라'고 말씀하시더라.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오래된 두부 가업을 그대로는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김 대표의 '골프 인생'은 그후부터 '두부 인생'으로 바뀌었다. 그 때가 2000년대 초반이다. 하지만 대기업들 틈바구니속에서 두부를 만들어 시중에 파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소비자들의 손은 자꾸 대기업 두부로만 갔다.

 

"하겠다고 마음먹고나서 실제 부딪쳐보니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100% 국산콩을 쓰고 (양을)적게 만들다보니 단가도 비싸고, 브랜드 파워도 없고,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대기업 두부만 선호했다. 그래서 이번엔 공장옆에 두부전문점을 차렸다. 공장에서 만든 두부라도 식당에 활용해보기 위해서다(또 웃음)."

 

할아버지(김구원 선생)는 전쟁 직후 먹고 살기 위해 두부를 만들었고, 그의 손자(김 대표)는 먹고 살기 위해 음식점을 차린 것이다. 2008년도의 일이다.

 

골퍼의 음식장사는 녹록치 않았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음식점 하루 매출이 10만원대에 머물던 날도 적지 않았다. 식당을 하다 굶어죽기 딱 좋았다.

 

그래서 김 대표는 이를 악물고 두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 때는 골프에 미쳤듯이 이젠 두부가 그 대상이 된 셈이다. 그런 노력으로 김 대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는 '신지식 농업인장 두부 1호'가 됐다. 지금은 '명인'에 도전하고 있다. 그 사이 TV 등 매스컴 곳곳에도 소개되면서 두부전문점에 손님들이 점점 늘었다.

 

최근엔 소상공인연합회의 소상공인 공동브랜드 'K,tag'에도 '신선함과 건강함'으로 음식점이 선정됐다.

 

김동윤 대표가 경기 김포 고촌에 있는 '김구원선생두부' 매장에서 촬영을 하고 있다. /김승호 기자

김 대표가 만든 김구원선생두부는 '기력두부'로도 잘 알려져있다. 특허청으로부터 '한방두부 약재 추출물 특허'도 받았다.

 

그러고보니 그가 내놓은 두부에서 약간 붉은 빛깔이 보인다.

 

"두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응고를 위해 간수를 쓰는데 우린 간수를 바닷물 등이 아닌 산수유 추출물을 쓴다. 산수유의 신맛이 두부를 응고시키는 동시에 건강함을 더한다. 또 두부를 끓일 때 홍삼, 녹용, 황기, 대추 등 8가지 한약재도 첨가한다."

 

그의 설명을 듣고보니 '기력두부'라는 말이 이해가 됐다.

 

지난해부터는 좋은 일도 생겼다. 입점하는데 깐깐하기로 소문난 마켓컬리에서 직접 연락이 온 것이다. 마켓컬리에서 첫 달 800만원에 그쳤던 매출은 최근 1억6000만원까지 늘어날 정도로 김구원선생두부는 인기다.

 

지금은 두부, 순두부, 청국장, 기력두부, 서리태콩물 등 10여개 제품을 판다. 마켓컬리에 이어 쿠팡에도 입점했다. 최근엔 SSG등에도 추가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두부가 주재료인 만두 신제품도 나온다. 그러다보니 두부공장의 기계소리도 멈추지 않고 있다. 올해에만 공장에서 일할 7명을 새로 뽑았다. 한 때는 후회했던 일이 감사한 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두부는 중국, 일본의 두부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훌륭하고 맛과 건강에도 더 좋다고 자부한다. 식당과 공장이 돌아가다보니 이젠 다른 꿈을 꾸게 됐다. 앞으로 세계인의 식탁에 한국의 두부를 올리는 일을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 소망이다. 충분히 실현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김 대표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열살된 초등학생 아들도 아빠를 따라 두부를 만드는 게 꿈이란다. 김 대표가 5대째인 아들과 손잡고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두부를 널리 알릴 날도 머지 않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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