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남권엔 공원이 없다. 공원 면적별로 서울시 25개 자치구를 줄 세워보면 하위 20%(5개)에 서남권이 3개나 포함돼 있다. 2018년 기준 금천구(2.21㎢), 양천구(2.91㎢), 영등포구(3.09㎢)의 공원 면적을 다 합쳐도 서초구(16.04㎢)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시민 1인당 공원면적으로 따지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쾌적한 환경과 시민 건강을 위한 1인당 최소 공원면적을 9㎡로 제시하고 있다. 현재 서울 25개구 중 40%가 이 기준에 미달하는 데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서남권에 포진해 있다. 양천구(6.2㎡), 강서구(7.2㎡), 구로구(7.6㎡), 영등포구(7.7㎡), 금천구(8.7㎡)가 그 주인공이다.
녹지가 부족한 서남권의 허파로 불리는 보라매공원은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자리해 있다. 1958년부터 공군사관학교로 사용되다가 1985년 서울시에서 인수해 공원으로 조성, 이듬해 5월 개장했다. 공원 이름은 공군사관학교 때의 상징인 '보라매'에서 따왔다. 총 면적은 42만4106㎡이다.
◆신종 코로나가 바꿔놓은 공원 풍경
흰 눈이 펄펄 내리는 지난 17일 오후 보라매공원을 찾았다. 지하철 2호선 신대방역 4번 출구로 나와 닭꼬치 냄새를 따라 문창초등학교 방향으로 약 5분(336m)을 걸었다. '보라매공원 남문'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나왔다. 평일 오후라 공원에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털모자와 장갑, 두툼한 패딩으로 중무장한 사람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영등포구에 사는 박모(63) 씨는 "보통 이 시간이면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커뮤니티센터에서 스크린골프를 칠 시간인데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문을 닫아서 갈 수 없게 됐다"며 "맨날 집에만 있다가 답답해서 바람 좀 쐴 겸 해서 왔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공원 곳곳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예방행동 수칙을 안내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플래카드에는 '1. 마스크 착용, 2. 손씻기(청결), 3. 기침 예절' 등이 적혀 있었다.
취업준비생 이종우(25) 씨는 "운동을 하기 위해 거의 매일 공원에 온다"면서 "전날(2월 16일) 서울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2명이 발생해 오늘은 공원이 텅텅 비어있을 줄 알았는데 평소보다 약간 적을 뿐 큰 차이 없다"며 어깨를 으쓱 올렸다.
지난 17일 공원에서는 반려견을 산책시키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 일상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만 빼꼼히 내놓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서인지 하얀색 보건용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거나 방한용 넥워머로 얼굴 전체를 꽁꽁 둘러 싸맨 이들이 많았다.
◆코로나19보다 무서운 무료함
보라매공원의 주요 시설은 ▲잔디광장 ▲에어파크 ▲음악분수 ▲연못(옥만호) ▲다목적운동장 ▲인조잔디축구장 ▲배드민턴장 ▲인공암벽등반대 등이다. 원래는 농구장과 X-game장, 인라인스케이트장도 있었지만 신림 경전철 공사로 폐쇄됐다.
공원에서 옛 공군사관학교의 정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비행기 8대가 전시된 에어파크다. 이날 보라매공원에서 에어파크보다 인기가 많은 장소는 옥만호 왼쪽에 설치된 아담한 규모의 비닐하우스였다. 지하철 2량 정도 크기의 비닐하우스에는 20여명의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기를 두고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걸리는 게 두렵지 않냐'고 묻는 말에 이모(79) 할아버지는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건 무료함"이라면서 "다들 마스크를 끼고 있고 입구에 손세정제가 있어 괜찮다"며 빙긋이 웃으며 답했다.
비닐 천막으로 둘러싸인 작은 사랑방 앞엔 붉은색 글씨로 경고문구가 빽빽이 쓰여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할 것', '장기알과 판은 꼭 닦고 사용할 것', '손을 씻고 장기를 둘 것' 등을 지켜달라는 내용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당부의 글에는 "매일 자체적으로 장기판과 내부를 소독하고 있습니다"라며 "이곳 봉사자가 수고함"이라는 내용이 깨알같이 적혀 있어 보는 이를 미소 짓게 했다.
시민 최정순(56) 씨는 "보라매공원에는 청소년수련관도 있고 장애인복지관도 있고 청소 노동자를 위한 휴식공간도 있다"며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 등 모두 다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곳이라 참 좋다"고 말했다.
현재 보라매공원에는 한국자유총연맹 서울시지회, 한국청소년연맹, 서울시립보라매청소년수련관, 동작구민회관, 서울시립지적장애인복지관, 남부장애인복지관, 동작경찰서보라매파견소와 2010년 5월 개관한 시민안전체험관 등 11개 기관이 입주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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