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미국의 한 대형 마트가 고객에게 DM을 보냈다가 한바탕 소동이 난 적이 있었다. 해당 마트는 단골 고객의 딸을 위해 출산준비물들로 꾸며진 DM을 보냈는데, 그 고객의 딸은 고교생이었던 것. 단골 고객은 마트에 "아직 고교생인 딸에게 이런 DM을 보내면 어떻게 하냐"고 강력 항의했고, 마트 측의 사과로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몇주 뒤 그 고객은 자신의 딸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어떻게 마트가 자기보다 먼저 딸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됐는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마트는 단골 고객의 물품 구매 패턴을 수집·분석해 나름 최적의 구매리스트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 리스트에는 고객의 딸이 아버지의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매한 것도 포함됐고, 그 전까지 여고생이 흔히 구매하던 물품 패턴이 바뀌면서 출산과 관련된 물품, 유아용품 등의 구매 이력이 올라오자 이를 토대로 임신부에게 적합한 추천상품을 DM으로 보냈던 것이었다.
이 일은 빅데이터의 '위력'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한동안 회자된 바 있다. 지금 국회에서 소위 '데이터3법'의 국회 통과 여부를 놓고 찬반 의견이 들끓고 있다. 데이터3법이란 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의 법안을 말한다. 이들 법안은 4차 산업혁명의 가장 기초가 되는 개인정보를 '실명'이 아닌 '가명' 방식으로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골자다.
기업들은 데이터3법의 통과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각종 개인정보가 4차 산업혁명의 발달에 필수인데, 데이터3법은 이런 기업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6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통해 "데이터는 미래 산업의 원유(原油)인데 지금 국내 상황은 원유 채굴을 아예 막아놓은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4차 산업과 미래 산업을 이야기 할 수 있을지 정말 아득한 심정"이라고 말했을까.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은 무분별한 개인정보의 남용 위험을 지적한다. 가명으로 개인정보를 활용하더라도 추가 정보를 결합하면 개인을 특정할 수 있다는 이유다. 기업이 소위 '빅브라더'가 돼 내 모든 정보를 샅샅이 들여다보고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해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악용할 경우 평범한 시민들에게 금전적 불이익을 가져다 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으로 그 같은 이유 때문에 법안이 마련돼야 하고,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데이터3법이 그렇게 중요하고 민감한 이슈라면 당연히 장단점을 분석하고 해외 사례는 어떤지에 대한 논의가 됐어야 한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었고, 기나긴 정쟁으로 제대로 된 논의 한번 없다가 갑자기 법안 통과 여부만 놓고 갑론을박하는 상황이다.
우리 기업들이 국내 법에 발목이 잡혀 있는 동안 구글, 페이스북 같은 외국 업체들은 이미 우리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다. 이들은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앱을 사용할 때 허락한 개인정보활용 동의를 기반으로 우리가 어느 음식점에 갔는지 거기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고 할 정도로 우리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다. 지금의 법이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지, 부정적인 측면만 우려해 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것만이 능사인지 곰곰이 되새겨봐야 할 때다.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마치 흐르는 물에 있는 것처럼, 지금 같은 시기에는 잠시만 멈춰 있어도 뒤처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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