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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54) 공공도서관 몰빵된 송파구에 들어선 공공헌책방 '서울책보고'

공공도서관 현황./ 자료=서울시 열린데이터광장, 그래픽=정민주 기자



지난 8일 서울책보고를 찾은 시민들이 서가를 둘러보고 있다./ 김현정 기자



1910년대 국수 한 그릇 가격이었던 딱지본 소설에서부터 반공 만화 똘이장군, 반세기 전 창간한 월간 아동잡지 소년중앙까지…. 헌책 애호가라면 빼놓지 말고 들러야 할 보물 창고가 잠실철교 밑에 생겼다. 서울시는 신천유수지 내 암웨이 창고를 공공헌책방으로 재생해 지난 3월 '서울책보고'의 문을 열었다.

서울책보고에는 청계천 헌책방 거리의 터줏대감인 밍키서점과 동아서점, 동신서림 등 29개 점포의 손때 묻은 책들이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시는 헌책방에서 들여온 15만여권의 책을 위탁 판매한다. 수익금 중 10%의 수수료를 뺀 나머지가 헌책방 주인에게 돌아간다. 개관 후 5개월 동안 12만8000여권의 책이 판매돼 4억8000만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서울도서관 관계자는 "공공헌책방을 만든 선례가 없어 이렇게 흥행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시민들이 생각보다 많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옛 추억에 손이 가요 손이 가

8일 서울책보고에서 만화특별전시인 '7080 추억의 만화전'이 진행되고 있다./ 김현정 기자



가을 기운이 완연해진 백로를 맞아 지난 8일 송파구 신천동 서울책보고를 찾았다. 비가 쏟아질 듯 어두운 먹구름이 하늘을 가렸지만 헌책방은 사람들로 바글댔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아' 하는 탄식이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40대쯤 되어 보이는 한 중년 여성이 고전 순정만화 캔디캔디의 표지를 어루만지며 세월에 흘러간 청춘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날 '7080 추억의 만화전'에서는 캔디캔디 외에 조항리 화백의 로보트 태권 브이, 짱가의 우주전쟁, 황금박쥐, 꺼벙이 등을 만나볼 수 있었다.

강원도 원주시에서 온 이지윤(22) 씨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보고 왔다. 도로 한가운데 있으니까 찾기도 쉽고 책도 많아서 좋다"며 "'아직, 도쿄'라는 책을 읽어 봤는데 재밌었다"며 활짝 웃었다.

직장인 서모(33) 씨는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면서 "맘 같아서는 전부 사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의 여의치 않다. 어렸을 때 봤던 책들이 이렇게 비싸질 줄 알았다면 버리지 않고 다 모아놓는 건데···"라며 아쉬워했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형 명랑만화 '꺼벙이'는 2000원에서 20만원으로 가격이 100배 이상 뛰었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책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손기정 선수가 우승한 1936년 베를린올림픽 대회의 화보와 1918년 역사학자 이능화가 한국 불교사를 집대성한 책 조선불교통사, 고려 후기 문신 문익점의 시문을 모은 삼우당 문선생 실기(實記, 사실을 적은 기록) 등 소장가치가 높은 책들은 유리관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지난 8일 서울책보고를 방문한 어린이들이 책을 읽고 있다./ 김현정 기자



주부 신모(37) 씨는 "애들이 책을 좋아해 서점에 자주 간다. 새 책을 꺼내보는 게 약간 눈치 보였는데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서 참 좋다"며 "마음 놓고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이다"고 말했다.

가족들과 서울책보고에 온 어린이들은 종이상자를 펴서 만든 간이 의자나 방석 위에 앉아 한껏 편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있었다.

서울도서관 관계자는 "서울책보고를 찾는 시민들의 연령대는 굉장히 다양하다"며 "인스타그램에서 막 뜨기 시작하면서 젊은 친구들이 늘어났고 최근에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방영되고 나서부터는 노부부들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공공도서관 차고 넘치는 송파구에 또?

공공도서관 현황./ 자료=서울시 열린데이터광장



서울 관악구에 사는 김모(32) 씨는 "우리 동네에서는 이런 대형도서관을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다"며 "잠실에는 도서관도 많고 주변에 대형서점도 많은데 서울시가 왜 또 여기에 공공헌책방을 만들어줬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못마땅해했다.

24일 서울시 열린데이터광장에 공개된 '공공도서관 현황정보'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으로 서울에는 총 173곳의 공공도서관이 있다. 송파구는 강남구에 이어 서울에서 공공도서관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공공도서관은 강남구(13곳)에 가장 많았다. 송파구·구로구 12곳, 노원구 11곳, 성북구 10곳, 강서구·양천구 9곳, 강동구 8곳 순이었다. 광진구·금천구·중구에는 겨우 4곳뿐이었다.

서울도서관 관계자는 "서울책보고 자리가 창고 부지다. 암웨이가 나가고 그동안 여기가 비어있었다"며 "이곳을 책정거장으로 활용해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때부터 검토된 것"이라고 말했다.

8일 한 시민이 공공헌책방 '서울책보고'에서 책을 고르고 있다./ 김현정 기자



이날 서울책보고에서 만난 사람들은 책 찾기가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직장인 정모(42) 씨는 "서울책보고의 유일한 단점은 책 찾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면서 "박완서 작가의 황혼이라는 책을 찾고 있는데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경기도 이천시에서 온 황승희(23) 씨는 "헌책들을 장르로 구분해 놓은 게 아니라 서점별로 분류해 놔서 책을 찾기 힘들다"면서 "알라딘 중고서점은 '책장 위에서 몇 번째'라고 책 위치를 알려주는데 여기는 책방 이름만 나와 있어 못 찾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서울도서관 관계자는 "헌책방에서 책을 찾아보는 느낌을 주기 위한 컨셉이다"며 "헌책방을 운영하는 분들이 나름의 분류기준을 가지고 책을 정리하고 있다. 사회과학 서적만 제공하는 책방도 있고 종교책만 갖고 있는 책방도 있어 일괄적인 분류는 힘들지만 시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쿠호도 케틀의 공동 CEO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시마 고이치로가 펴낸 '나는 매일 서점에 간다'는 책에 의하면 좋은 서점은 구입 예정이 없던 책을 사게 만드는 곳이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욕망을 발견해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내가 이런 분야에도 흥미가 있었구나'를 느낄 수 있는 장소에서 커다란 지적 자극을 맛볼 수 있다"며 "인터넷 서점은 갖고 싶은 걸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게 해주지만 실제 서점은 원하는 걸 깨닫게 해준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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