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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가로 산다는 것



예술가가 없다면 예술도 존재할 수 없다. 만약 그들이 창작을 포기한다면 인간 삶은 감동 없는 건조함으로 메워지며, 철학과 지식 역시 반쪽에 머무른 채 진리에 대한 갈증은 영원히 해소 불가능해질 것이다. 예술이 끝없이 질문해온 존재의 근원과 현상의 얼개를 드러내려는 인식론적 결과 역시 도출되기 어렵다.

다행히도 예술을 잇는 예술가들이 있기에 우린 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세계를 열람한다. 공동체 속 구성원들 간 존재하는 여러 갈등과 문제들을 정제하여 화해와 소통으로 풀어내는데도 예술가들의 역할은 크다. 특히 그들 덕분에 많은 이들이 뜻밖의 것에서 심미적 가치를 느끼며 위로와 치유까지 경험한다.

하지만 예술가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꽤나 메마르다. 예술은 곧잘 잉여로 치부되고, 모든 굴레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무목적의 목적성을 곡해한 채 사회적 중요성을 의심한다.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매개자로서의 위치와 권위는 인정받지 못하기 일쑤이며, 예술가들의 언어와 형식에서 새로운 감수성을 발견하거나 상상의 언표를 읽을 수 있음에 대해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다.

보상은 고사하고 인식의 괴리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로 예술가들의 삶에 관한 대중의 관점은 한량이나 백수와 진배없다. 척박한 현실을 기름지게 만들고 무언가에 기여한다는 예술계 내 시각과 놀라우리만치 비대칭적이다. 이는 실존의 사실적 세계에서도 그렇지만 익명의 공간에선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일례로 예술 관련 언론보도마다 반드시 따라붙는 발언 가운데 일부는 한국사회가 예술과 예술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잘 보여준다.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당신들이 좋아서 하는 것인데 왜 내 세금을 쓰느냐" 식의 시선은 일상 곳곳에 뿌리내린 예술의 효용과 예술가들에 대한 몰이해를 반증한다. 세금 값보다 더 소중한 의미 값은 설 자리가 없다.

때론 인간적인 측면에서조차 모질다. 비록 소수라고는 해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예술가들의 부고 앞에서조차 거침없이 내뱉는 조롱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곳엔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예술가로 살며 세상에 남긴 공론의 가치는 들어있지 않다.

그럼에도 예술가들은 예술을 한다. 여전히 추우면 얼어 죽고 더우면 더워 죽는 현실에서도 예술을 통해 삶의 근원을 묻고,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구조와 건강한 미래를 위해 오늘도 그들은 예술이란 것을 한다.

물론 아무도 그러라고 시킨 적 없다. 누구도 그들에게 무거운 책임감을 지운 적도, 홀대받는 예술가의 삶을 살라고 등 떠밀지 않았다. 예술가인들 모를까. 알고 있다. 다만 예술가란 운명과 기질이 부르는 것이고, 지금 이 자리에 예술가로 서 있음으로써 확인된다는 사실에선 보편적 이해와 거리감이 없지 않다.

안다는 것, 그 '앎'엔 예술가로 한 번 내디딘 발걸음은 좀처럼 물리기 어렵다는 숙명이 내재되어 있다. 예술이 평생 마셔야 할 독약이었음을 깨달았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예술의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중독된 이들은 선택의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어진다는 것도 포함된다.

예술은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동기로 하나, 예술가로서의 삶은 너무 잘 알기에 그들은 주변의 매섭고 독한 소리에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내 것을 나눠주면서도 들어야 하는 아픔마저 모든 것이 제 탓인 양 천형 같은 자신의 숙명을 스스로 책망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래서일까, 정작 자신의 적지 않은 부분을 내려놓은 채 걸으면서도 나 이외의 것을 챙기는데 인색하지 않은 그들의 삶을 응원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존재하는 예술가들을 조금 더 부드럽고 포근하게 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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